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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Ⅱ. 한계가 없는 앎과 한계가 있는 삶 - 1. 보편적 앎에 대한 장자의 비판, 객관적인 옳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Ⅱ. 한계가 없는 앎과 한계가 있는 삶 - 1. 보편적 앎에 대한 장자의 비판, 객관적인 옳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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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객관적인 옳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제물론(齊物論)편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재구성한다면, 우리는 그의 입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어보자.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겠지. 미꾸라지도 그럴까?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 나서 떨 수밖에 없을 것일세. 원숭이도 그럴까? 이 셋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거주지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달게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다고 먹지.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원숭이는 비슷한 원숭이와 짝을 맺고, 순록은 사슴과 사귀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놀지 않는가! 모장(毛嬙)이나 서시(西施)는 남자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보자마자 물 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는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은 보자마자 급히 도망가 버린다.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아름다움을 안다고 하겠는가?”

民濕寢則腰疾偏死, 鰌然乎哉? 木處則惴慄恂懼猨, 猴然乎哉? 三者孰知正處? 民食芻豢, 麋鹿食薦, 蝍且甘帶, 鴟鴉耆鼠, 四者孰知正味? 猨猵狙以爲雌, 麋與鹿交, 鰌與魚游. 毛嬙麗姬,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麋鹿見之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이 이야기는 왜 장자가 객관적 인식에 대해 비판적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객관적 인식 혹은 사유는 객관적으로 옳은 것[同是]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장자는 올바른 거주지’, ‘올바른 맛’, 그리고 올바른 아름다움을 예로 들면서 객관적 인식은 우리가 자임하는 것처럼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장자에 따르면 사람ㆍ원숭이ㆍ미꾸라지ㆍ새 따위는 각각 자신의 종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두가 옳다고 동의하는 객관적인 것이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장자에 따르면 인식주관과 관련되지 않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대상의 의미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수영은 좋은 운동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은 수영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좋아졌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가지고 수영을 배우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만약이 사람이 귀에 염증이 있는 사람에게도 이런 주장을 권고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귀에 염증이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을 믿고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장자가 우리에게 주는 권고는 모든 인식과 진리가 삶이라는 구체적 문맥에서 의미 있는 것이지 결코 모든 문맥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용

목차

장자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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