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노예의 길에서 주인의 길로
‘주체’는 기본적으로 주인과 자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이 점에서 주체와 가장 거리가 먼 개념은 아마도 노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여기서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의 사례를 통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국가가 생긴 이래 가장 지속적이었던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녀 차별, 특히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지배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남성 우월주의를 흔히 가부장제라고 부릅니다. 다행히도 가부장제가 하나의 낡은 관습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성이 노예에서 주인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지요. 이 점에서 여성을 통해서 우리는 ‘주체’가 가진 함의를 가장 분명하게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통 사회에서 여성이 억압받았던 흔적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흔적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특유의 명명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이름, 강신주(姜信珠)를 예로 들어보도록 하지요. 이것은 우리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이름 속에 가부장제의 관습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자세히 한번 살펴봅시다. 강이란 성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나아가 우리 시조까지 모든 남자가 공유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信)이란 글자는 저와 동일한 서열에 있는 모든 종친이 공유하는 등급을 표시합니다. 그래서 저는 강이라는 성을 쓰고 신이라는 항렬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를 들어 ‘강신우’라는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이 저와 같은 항렬로서 형제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 주(珠)라는 글자는 단지 같은 항렬의 사람들로부터 저를 식별해주는 단순한 구별 기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여전히 널리 사용되는 우리의 명명법에는 가부장제의 논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이름은 그 자체가 바로 움직이는 족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더구나 전통적인 명명법에서 흥미로운 것은, 제가 족보를 펼쳐 보지 않는 한 증조할머니부터는 이름은 고사하고 그녀들의 성씨조차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이름에는 여자의 성씨와 이름, 다시 말해 여성의 고유한 존재 자체가 철저히 망각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 여성이 결혼 후에도 자신의 고유한 성씨를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고유한 성씨가 아니라 남성인 그녀 아버지의 성씨인 셈이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의 이름에는 이처럼 여성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요? 이것은 단순히 우연의 장난일까요? 그러나 꼼꼼히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사유 방식을 찾아보면, 이것은 그들의 뿌리 깊은 인간 이해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유명했던 정철(鄭澈, 1536~1593)의 『훈민가(訓民歌)』 첫 번째 구절입니다.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실가
하늘 ᄀᆞᄐᆞᆫ ᄀᆞ 없ᄉᆞᆫ 은덕(恩德) 어듸다혀 갑ᄉᆞ오리. 『훈민가』
이 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니, 부모님의 낳아주신 은혜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쓰인 것입니다. 시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정철은 백성들에게 효도의 당연함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아버님과 어머님의 은혜를 모두 칭송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유학 지식인들의 특이한 생물학적 관념입니다. ‘아버님이 나를 낳으셨다면, 어머님은 나를 기르셨다[父生我身 母鞠吾身]!’ 여러분은 아마 제가 지금 정철의 시를 잘못 인용하고 있다고 순간적으로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아버님이 나를 낳으실 수 있겠습니까? 엄격하게 말하자면 사실 여성인 어머님이 나를 낳으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결코 잘못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조선 시대 사람들은 자식을 낳는 것은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단지 자식을 자궁 안이나 자궁 바깥에서 기르는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의 논리적 귀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새로운 개체를 낳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버지, 즉 남성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보는 관념입니다.
생식에 있어서 남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런 관념은 기본적으로 식물의 성장과 발육에 대한 관찰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보리라는 식물의 생장을 결정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결국 보리의 씨앗일 것입니다. 물론 동일한 보리 씨앗이더라도 어떤 땅에서는 잘 자랄 수 있지만, 다른 땅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잘 자랐다면 그것은 항상 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씨앗이 보리 씨앗이니 결코 다른 식물로 자랄 수는 없겠지요. 보리라는 식물의 씨앗이 그 개체의 고유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있어서는 남성의 씨앗이 한 개체의 중요한 특성을 결정한다는 논리이지요. 그런데 역설적인 점은 이런 식물학적 상상력이 함축하는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가령 보리 씨앗을 심었는데도 보리로서 제대로 자라나지 않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이제 전적으로 땅 때문입니다. 땅이 척박하거나 양육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보리 씨앗이 보리로 자라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왜 조선 시대 양반들이 후손이 생기지 않는 책임을 전적으로 부인에게만 돌렸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땅, 즉 여성 잘못이라는 인식 때문이지요. 이로부터 첩실 제도나 심하면 씨받이 같은 제도까지 생겨났던 것입니다. 정부인이라는 땅이 척박해서 남성의 씨앗이 자라지 않으므로, 땅을 바꾸어야 한다는 발상입니다.
생식에 관한 이와 같은 유학자들의 식물학적 상상력은, 후손들의 성씨가 당연히 남성의 것을 따라야만 한다는 쪽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학자들의 이런 식물학적 상상력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생물이 어떻게 새로운 개체를 낳는 지 배우고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우리 인간의 염색체 수는 46개입니다.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는 각각 이 숫자의 절반인 23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면서 하나의 완전한 수정체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새로 태어난 수정체는 23+23, 즉 46개의 염색체를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이 수정체가 자궁 속에서 자라서 마침내 새로운 개체로 이 세계에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생식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됩니다. 수정이 이루어질 때 수억 마리의 정자들은 하나의 난자에게 간택되기 위해 무한 경쟁에 돌입하고, 그중 한 마리만이 난자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생식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할 뿐만 아니라, 어느 측면에서 보면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더 우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초적인 과학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유학자들이 지지하는 가부장제의 식물학적 상상력은 어떤 근거도 없는 허구적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부장제를 생물학적 측면에서까지 주장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기초적인 과학 상식부터 부정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누가 이것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허구적 관념을 신봉했던 전통 유학 사회에서 가장 암울했던 사람들은 역시 여성 자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여성에게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따라야 했던 철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2장에서도 살펴본 삼종지도입니다. 이 삼종지도의 논리는 오늘날 호주제(戶主制)라는 제도 속에 살아 있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손자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손자가 아직 정도 떼지 못한 갓난아이라 하더라도 그 손자가 바로 남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를 ‘집의 주인[戶主]’으로 관념상 떠받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 손자의 형 그리고 아버지, 나아가 심지어 할아버지까지도 모두 생존하지 않는 경우일 것입니다. 삼종지도란 말 그대로 조선 시대 여성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반드시 걸어가야만 하는 길[道]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길을 따라간 여성에게 조선 시대는 ‘열녀(烈女)’라는 호칭과 더불어 열녀문을 하사했고, 동시에 그 가문이나 마을에 세금 감면 등의 경제적 혜택까지 부여했다고 합니다. 반면 이 길을 벗어나면 어느 여성도 정숙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그럴듯한 대우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삼종지도가 여성의 뜻과는 무관하게 모든 여성 일반에게 가해진 강압적인 윤리 원칙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삼종지도는 여성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학적 가부장제에 입각하여 남성에 의해 철저히 강제되었다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부터 골수에 사무치도록 이 관념에 대해 교육받으며 자란 여성에게 삼종지도는 마치 제2의 천성,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자아(superego)와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부당하다며 거부하려 했던 그 당시 여성에게는 마치 자아가 파괴되는 듯한 위험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자아의 비극적인 분열 현상이지요. 조선 시대를 포함한 전근대사회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인격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개인 본인이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에 의해 그의 삶이 결정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근대사회에서 정말 중요했던 것은 운 좋게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불행히도 백정의 집안에 태어났는지, 혹은 운 좋게 남성으로 태어났는지, 아니면 불행히도 여성으로 태어났는지의 여부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전근대사회의 좋은 점을 칭송하는 사람이라도 그 자신이 백정의 집안에서, 그것도 비천한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살게 되었을 고통스런 삶에 대해서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합니다. 전근대사회는 얼핏 보면 마치 동방예의지국이었던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진정으로 윤리적인 사회였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과 판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오히려 윤리와 담을 쌓고 있는 사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 길들여진 애완견이 사람이 부과한 규칙을 제대로 준수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개를 윤리적인 개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문제입니다. 어떤 인격적 반성이나 자율적 선택을 수반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인간의 예절이나 윤리는, 결국 애완견의 타율적 윤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같은 맥락을 염두에 둔다면, 2005년 3월 2일 우리나라에서 호주제가 법률적으로 철폐된 것은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법적으로나마 여성이 타율적이지 않을 수 있는 기초적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조선 시대 500년을 내려오던 유학적 가부장제가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성이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영위해가지 못한다면, 호주제 폐지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 도처에는 그리고 여성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유학적 가부장제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여성은 제도에서 보장하는 법률적 주체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철저하게 주체로서 설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인용
'책 > 철학(哲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2장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니체가 칸트를 공격했던 이유 (0) | 2021.06.29 |
---|---|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2장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이문열의 칸트적 ‘선택’ (0) | 2021.06.29 |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1장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더 읽을 책들 (0) | 2021.06.29 |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1장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집착 없이 살아가기 (0) | 2021.06.29 |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1장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 (0) | 202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