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증자 ‘전이귀지(全而歸之)’에서 해방되다
8-3. 증자가 병이 깊어졌다. 이에 문중(門中)의 제자들을 불러 죽음의 침상에서 말하였다: “열어 내 발을 보아라! 열어 내 손을 보아라! ‘벌벌떠네, 오들오들.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엷은 얼음 위를 걸어가듯’ 시(詩)에 이런 노래가 있지 않니. 아~ 이 순간 이후에나, 나는 비로소 온전한 몸을 지키는 근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노라! 아해들아!” 8-3.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이 장면을, 『효경』이 말하는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판에 박힌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해서 해석하는 것은 지능이 박약한 자들의 소치 일 뿐이다. 『효경』이 공자와 증자간의 대화의 형식으로 되어있고, 또 증자의 사상이 ‘효’를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장을 무조건 『효경』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주석가들의 능사이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이 미라(mirra, mummy)를 만들 때, 그리고 중국인들이 그토록 정교한 벽옥의 수의 속에 사체를 보관할 때, 모두 부활의 사상이 있었다. 부활의 사상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종교문화의 공통분모였다. 단지 부활한 사람이 쌩으로 산 사람이 되어 돌아와서 산 사람을 재판한다는 좀 터무니없는 재림의 사상만이 초기기독교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로마의 박해에 대한 피해망상증이 그렇게 둔갑된 것이지만, 이것도 전혀 근거없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다신론의 포용적 종교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기독교를 박해할 이유가 없었다. 단지 그들이 박해한 것은 로마제국에 항거하는 유대인들의 정 치반란이었을 뿐이다. 하여튼 대부분의 종교문화에 있어서의 부활사상은 죽음의 세계로의 부활이다. 따라서 온전한 신체를 죽음의 순간에 보지한다는 것은 온전한 몸으로 부활된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할지라도,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신체를 온전하게 죽음의 순간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그토록 전화(戰禍)와 천재(天災) 나 불의의 사고가 많았던 시절에 참으로 행운 중의 대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효(孝)로서 말하자면 으뜸 중의 으뜸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모에 대한 효도이기에 앞서 나의 존재에 대한 최대의 복지(well-being)를 의미하는 것이다. 온전한 몸을 보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게 나를 지킨다는 것이요, 그것은 앞서 말했지만, 의료혜택과는 무관한 나의 실존적 삶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의 현비(顯妣)께서도 95세로 돌아가실 때, 그 손과 발이 백옥 같이 희었고 꼭 어린애 손발과 같이 보드라웠다. 임종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엄마의 손발을 주무르면서 바로 본 장의 장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열라’는 증자의 명령은 덮여있는 이불을 걷어보라는 의미로도 해석하고, 청유(淸儒) 중의 혹자는 오그라붙는 손ㆍ발을 펴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전자가 보다 편안한 해석일 것이다. 『시경』의 인용문은 소아(小雅) 「소민(小旻)」의 마지막 세 구절이다. 뭔가 국민의 불안감을 반영한 멋있는 노래이다. ‘이금이후(而今而後)’는 단순히 오늘 이후라는 뜻이 아니라, ‘이 순간’이라는 어떤 강조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금(今)’앞에 ‘이(而)’가 한 번 더 강조된 것이다.
‘夫’는 부(扶)라고 발음한다. ○ ‘계(啓)’는 이불을 제킨다, 연다는 뜻이다. 증자는 평소 때부터 신체는 부모로 받은 것이라서 감히 훼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임종의 순간에 제자들로 하여금 덮은 이불을 열고 자기 수족의 온전한 모습을 보라고 한 것이다. 여기 ‘시’라고 한 것은 『시경』 「소민(小旻)」편이다. ‘전전(戰戰)’은 벌벌 떠는 것이다. ‘긍긍(兢兢)’은 계근(戒謹)하는 모습이다. ‘임연(臨淵)은 연못에 빠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리빙(履氷)’은 얼음이 함몰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증자는 온전하게 유지된 자기 몸을 보여주고 나서 그것을 보전(保全)함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말하였다. 죽은 후에나 겨우 훼상의 염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 것이다. ‘소자(小子)’는 문인(門人)을 가리킨다. 말이 끝난 후에 ‘얘들아!’하고 다시 부른 것은 반복해서 간곡히 당부하는 뜻을 전한 것이다 경계함이 참으로 깊다고 할 것이다.
夫, 音扶. ○ 啓, 開也. 曾子平日以爲身體受於父母, 不敢毁傷, 故於此使弟子開其衾而視之. 詩「小旻」之篇. 戰戰, 恐懼. 兢兢, 戒謹. 臨淵, 恐墜; 履冰, 恐陷也. 曾子以其所保之全示門人, 而言其所以保之之難如此; 至於將死, 而後知其得免於毁傷也. 小子, 門人也. 語畢而又呼之, 以致反復丁寧之意, 其警之也深矣.
이 사건은 공자가 죽은 후 약 45년 전후의 사건으로 추정된다. 증자의 죽음을 추념하고 그의 삶의 의미를 전하는 일종의 추도문으로서 기록된 파편일 것이다.
정이천이 말하였다: “군자의 죽음을 ‘종(終)’이라 표현하고, 소인의 죽음을 ‘사(死)’라고 표현한다. 군자는 그 몸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죽는 것이니, 삶을 온 전하게 끝냈다는 의미에서 ‘종(終)’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자는 온전하게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나 ‘면하였다’고 한 것이다.”
○ 程子曰: “君子曰終, 小人曰死. 君子保其身以沒, 爲終其事也, 故曾子以全歸爲免矣.”
윤언명이 말하였다: “부모는 온전하게 나를 낳아주었다. 그러니 나는 온전하게 그 몸을 되돌려야 한다. 증자가 임종시에 손ㆍ발을 열어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득도한 자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이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
尹氏曰: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曾子臨終而啓手足, 爲是故也. 非有得於道, 能如是乎?”
범순부가 말하였다: “신체도 오히려 훼손할 수 없는 것이어늘, 하물며 그 행실을 훼손하여 부모를 욕되게 한다는 것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范氏曰: “身體猶不可虧也, 況虧其行以辱其親乎?”
마지막 범순부의 외침이 우리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효(孝)의 사상은 바른 모습으로 어린 아동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 시기는 반드시 초등학교 1ㆍ2학년 시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1ㆍ2학년 국어교과서에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 불효라는 것을 가르치는 아름다운 고사를 꼭 반영시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원(久遠)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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