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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4. 증자가 죽기 전에 위정자에게 해주고 싶던 말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4. 증자가 죽기 전에 위정자에게 해주고 싶던 말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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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증자가 죽기 전에 위정자에게 해주고 싶던 말

 

 

8-4. 증자가 병환이 깊었다. 맹자가 병문안을 왔다.
8-4. 曾子有疾, 孟敬子問之.
 
이에 증자는 정중하게 말 문을 열었다: “새도 죽으려하면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아름답고, 사람도 이 세상을 하직함에 그 말이 착하여 들을 만한 것이라오.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도()가 세 가지가 있다오. 용모를 움직일 때는 반드시 폭력과 태만을 멀리하시오. 얼굴빛을 바르게 할 때에는 반드시 신실함에 가까워야 하오. 말을 입 밖에 낼 때에는 비루함과 거역함을 멀리하시오. 예라는 것은 사소한 규정이 아니라오. 제기를 어떻게 진열할까 하는 일 따위는 유사(有司)에게 맡기시오.”
曾子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籩豆之事, 則有司存.”

 

맹경자(孟敬子)2-6에서 공자에게 효()를 묻고 5-7에서 공자의 제자들의 자질에 관하여 질문하였던 맹무백(孟武伯)의 아들이다. 중손씨(仲孫氏)의 제8세이며, 맹씨가문 제11대 대부이다. 명은 첩(), 자는 의(), 경자(敬子)는 추증된 이름이다. 이 고사 역시 전장과 마찬가지로 증자 임종시의 기록이다. 증자가 말한 것을 그냥 ()’이라 하지 않고 언왈(言曰)’이라 말한 것은 뭔가 무게가 실려있다.

 

 

새도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도록 아름답다. 사람도 죽을 때는 그 말의 내용이 애처롭도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둘 다 죽음의 순간에 최선의 자기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러니 치자(治者) 당신이여! 죽어가는 나의 말을 새겨들으시오!

 

 

서두는 기막히게 아름답고 멋있는데 그 내용인즉 참으로 용렬하다. 이미 증자시기에는 도덕이 규범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째즈적 느낌이 전혀 없다. 마지막에, 변두(籩豆)의 일 같은 것은 유사에게 맡기라고 말한 것은 그래도 증자의 격을 나타내주는 말이기는 하나, 이미 제도적 세계와 내면적 세계가 이원화되어 공자의 가르침이 오직 내면적 세계에 있는 것인 양 훈수를 두는 논리가 졸렬하다. 송유의 도학적 분위기가 이미 증자에게 배태되어 있는 것을 규탐할 수 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세 가지 당부말을 고찰해보면, 고주는 ()’ 이후의 구문이 타인을 주어로 하고 있는 것으로 풀었고 신주는 자기 자신을 주어로 하여 풀었다. 고주는 내가 용모를 가지런히 하면 타인이 나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能濟濟蹌蹌, 則人不敢暴慢之也]’라는 식으로 푸는 것이다. 고주나 신주나 다 신통치 않은 이야기 들이다. 나는 신주를 따라 해석하였다.

 

 

맹경자(孟敬子)’는 노나라 대부 중손씨(仲孫氏)이며, 이름이 첩()이다. ‘()’이라는 것은 문병하러 왔다는 것이다.

孟敬子, 魯大夫仲孫氏, 名捷. 問之者, 問其疾也.

 

()’이라는 것은 스스로 말하였다는 강조이다. 새는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슬피 울고, 사람은 생명이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가므로 그 말이 착한 것이다. 이것은 대저 증자의 겸허한 표현으로 봐야할 것이다. 맹경자로 하여금 그 말의 진실됨을 깨달아 뇌리에 새기도록 하려 한 것이다.

, 自言也. 鳥畏死, 故鳴哀. 人窮反本, 故言善. 此曾子之謙辭, 欲敬子知其所言之善而識之也.

 

()’()’은 모두 거성이다. ()’는 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용모(容貌)’는 온 몸을 들어 말한 것이지 얼굴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은 거칠고 사나운 것이다沃案. 율곡언해는 로 읽었으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은 방자함이다. ‘()’은 사실에 부합되는 것이다.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이 신()함에 가깝다는 것은, 얼굴빛만을 장엄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는 말 그 자체이고, ‘()’는 말이 나올 때 그 소리의 분위기이다. ‘()’는 범용하고 비루한 것이다. ‘()’()’와 같은 뜻인데, 이치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제기이고, ‘()’는 나무를 깎아 만든 제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체적인 뜻은 도()가 없는 데가 없으나 군자 즉 치자가 귀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이 세 가지 일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수신(修身)의 요체이며, 위정(爲政)의 근본이다.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조존성찰(操存省察)하여 조차전패(造次顚沛)의 순간에도 위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저 변두(籩豆)의 일로 말한다면 기수(器數: 제상 위에 늘어놓는 기물의 숫자와 방법)의 지엽적인 것이니, 도의 온전한 모습은 이런 것들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직분은 유사의 책임이고 위정자인 군자가 중하게 여길 바는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 , 並去聲. , 猶重也. 容貌, 擧一身而言. , 粗厲也. , 放肆也. , 實也. 正顔色而近信, 則非色莊也. , 言語. , 聲氣也. , 凡陋也. , 與背同, 謂背理也. , 竹豆. , 木豆. 言道雖無所不在, 然君子所重者, 在此三事而已. 是皆脩身之要, 爲政之本, 學者所當操存省察, 而不可有造次顚沛之違者也. 若夫籩豆之事, 器數之末, 道之全體固無不該, 然其分則有司之守, 而非君子之所重矣.

 

정명도가 말하였다: “용모를 움직인다 하는 것은 온 몸을 들어 말한 것이다. 두루 행동함이 예에 맞으면 폭만(暴慢)이 이에 멀어질 것이다. 안색을 바르게 하면 망령되지 아니 하니 이에 신실함에 가깝게 될 것이다. 말과 어기(語氣)를 낼 때에 곧바로 진실한 마음 가운데서 나오면 이에 비루함과 이치에 어긋남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내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니,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변두(籩豆)의 일인즉슨, 담당자인 유사(有司)가 따로 있다고 말한 것이다.”

程子曰: “動容貌, 擧一身而言也. 周旋中禮, 暴慢斯遠矣. 正顔色則不妄, 斯近信矣. 出辭氣, 正由中出, 斯遠鄙倍. 三者正身而不外求, 故曰籩豆之事則有司存.”

 

윤언명이 말하였다: “내면에서 함양)이 이루어지면 밖(외모)으로 곧 드러나는 것이다. 증자는 수신(修身)으로써 위정(爲政)의 근본을 삼았으니 기용사물(器用事物)의 소소한 것들은 유사에게 맡기라고 말한 것이다.”

尹氏曰: “養於中則見於外, 曾子蓋以脩己爲爲政之本. 若乃器用事物之細, 則有司存焉.”

 

 

도학의 도통적 관심 때문에 쓰잘 데 없는 증자의 말에 이토록 길게 주석을 다는 주희의 의도를 간파해야 할 것이다. 윤언명의 한마디가 송유들의 관심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증자야말로 위정의 근본을 수신으로 생각한 적통성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편협한 수신(修身)’ 관념에만 매달려 위정(爲政)에 대한 폭넓은 사고를 하지 못한 조선유학의 병폐를 보는 듯하다. 그 병폐가 오늘 우리의 정치현실에까지 연속되고 있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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