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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21. 헐뜯길 만한 꺼리가 없는 우임금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21. 헐뜯길 만한 꺼리가 없는 우임금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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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헐뜯길 만한 꺼리가 없는 우임금

 

 

8-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임금은 내가 흠잡을 틈이 없는 분이시다. 마시고 드시는 것을 아주 소략하게 하시면서도 하늘과 땅의 하느님께는 인간의 정성을 다하셨다. 당신이 평소 입으시는 의복은 조촐하게 하시면서도 의례용 무릎가리개와 면류관에는 아름다움을 다하셨다. 당신이 거하시는 처소는 보잘 것 없게 하시면서도 백성을 위한 치수(治水)의 도랑 파기에는 몸소 있는 힘을 다 하셨다. ~ 우임금은 진실로 내가 흠잡을 틈이 없는 분이시로다.”
8-21. 子曰: “, 吾無間然矣. 菲飮食, 而致孝乎鬼神; 惡衣服, 而致美乎黻冕; 卑宮室, 而盡力乎溝洫. , 吾無間然矣.”

 

고성왕을 찬양한 공자의 로기온 중에서는 가장 가슴에 와닿는 위대한 언설이다. ()는 요()가 발탁한 인물이었다. 원래는 그의 아버지 곤()이 요의 명령을 받아 홍수를 다스렸지만 별로 성적이 좋질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들어서면서 관개의 개념을 전체적으로 정립하고,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정강이에 털이 날 틈이 없이 몸소 두 발로 뛰며 도랑을 파서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상서(尙書)』 「우공(禹貢은 그의 치수의 기록이다. 장엄한 언어로 중국의 산천이 질서를 잡아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결국 우는 치수의 공으로 순에게서 선양(禪讓)을 받아 제위(帝位)에 오른다. 당우(唐虞)의 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찬란한 고문명의 상징인 삼대(三代)가 시작되는 것이다. 즉 우임금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시대의 개막이며, ()왕조의 개조가 되는 것이다. 우는 요ㆍ순과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중국인의 의식 속에서는 항상 요ㆍ순과 동급의 성인으로 취급된다. 그러면서도 요ㆍ순은 전설적인 냄새가 나지만 우임금하며는 보다 구체적인 역사성이 느껴진다. 치수에 성공했다고 하는 것은 각 지역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작은 씨족공동체들이 더욱 강력하고 조직적인 정치체제로 연합되어 어떤 통일된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하의 중류지방에 거대한 통일문명이 등장케되는 그 상징성의 정점에 우임금이 서있고, 치수사업이라고 하는 하부구조가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공자의 이 우임금에 대한 예찬이야말로 공자가 생각한 성인, 즉 인간세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모든 가치관의 핵심을 예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신에 대한 모든 물질적ㆍ정신적 사치를 근원적으로 초월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리더가 될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비음식(菲飮食)’, 음식을 비박하게 하고, ‘악의복(惡衣服)’, 의복을 조악하게 하고, ‘비궁실(卑宮室)’, 궁실을 비천하게 한다. 가장 쉬울 듯하면서도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리더십의 자질에 속하는 속성이다. 진보와 개혁을 외치던 많은 정치적 리더들이 결국 이런 가치를 실천하지 못해 치욕으로 떨어진 사례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격하지 않았는가? 문명의 개벽은 오직 리더의 자기를 버리는 헌신적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임금의 존재는 우리에게 웅변해주고 있다.

 

 

()’은 거성이다. ‘는 음이 비()이다. ‘은 음이 불()이다. ‘은 호역(呼域) 반이다. ()’은 틈새이다. 그 틈새를 지적하여 비난[非議]하는 것이다. ‘()’는 각박한 것이다. ‘치효귀신(致孝鬼神)’이란 신들에게 제사지낼 때에 풍성하고 깨끗하게 지내는 것을 일컬은 것이다. ‘의복(衣服)’은 평상복이다. ‘()’은 앞치마처럼 생긴 무릎까지 덮어내려오는 예복이다. 가죽으로 만든다沃案, 옛날에는 가죽으로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로 여기서는 수를 놓아 화려하게 했다는 뜻이며 가죽보다는 비단 같은 고급천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은 면류관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제복(祭服)이다沃案. 틀렸 다. 앞에서 이미 제사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여기서 그 테마를 반복할 리가 없다. 여기서 불면(黻冕)’을 아름답게 했다는 뜻은 자기 평상 옷은, 항상 일하며 사는 임금이었으므로 검소하게 입었지만 공식적인 정사를 돌볼 때는 권위있게 아름답게 입어서 위의(威儀)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앞의 문장이 제식적 문제(ritual matters)였다면, 여기의 문장은 정치적 문제(political matters)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혁(溝洫)’은 들판 밭 사이의 물길[水道]이니, 이것은 강계(疆界)를 바르게 하고, 한발과 수해[한로(旱潦)]에 대비하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풍요롭게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검소하게 하는 것이, 각각 그 마땅한 바를 얻고 있으니, 비난할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찬미하시고 맨끝에서 다시 찬미하셨으니 아주 깊게 찬미하신 것이다.

, 去聲. , 音匪. , 音弗. , 呼域反. , 罅隙也, 謂指其罅隙而非議之也. , 薄也. 致孝鬼神, 謂享祀豐潔. 衣服, 常服. , 蔽膝也, 以韋爲之. , 冠也, 皆祭服也. 溝洫, 田間水道, 以正疆界, 備旱潦者也. 或豐或儉, 各適其宜, 所以無罅隙之可議也, 故再言以深美之.

 

양시(楊時)가 말하였다: “자기를 받드는 데는 아주 간소하게 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힘쓰는 것은 백성의 일이다. 그리고 아름답게 수식하는 것은 종묘조정의 예이니, 이것이 바로 천하를 소유하고서도 간여하지 않는다는 것(8-18)의 본뜻이다. 대저 어찌 흠잡을 틈이 있으리오?”

楊氏曰: “薄於自奉, 而所勤者民之事, 所致飾者宗廟朝廷之禮, 所謂有天下而不與也, 夫何間然之有.”

 

 

양귀산의 말이 간략하지만 구구절절이 옳다. 이 세상의 지도자는 반드시 자기를 받드는 데는 각박하게 하고, 대중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는 후덕하게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 백성을 위한다 하면서 자신의 소견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는 것도 대부분 자기욕심에서 기인하는 것이 많다. 동방정치사상의 기본은 역시 무위지치(無爲之治)’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안 하고 논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위()를 소유하지 않으면서 강력한 위()의 결과를 대중에게 가져다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문제도 양귀산은 정확히 이해했다. 즉 불면(黻冕)종묘조정지례(宗廟朝廷之禮)’라 했으니 정치적 의례일반을 포괄해서 지칭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례용 무릎가리개와 면류관이라고 번역하였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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