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자가 드물게 말한 것
9-1. 공자께서는 이(利)와 명(命)과 인(仁)은 드물게 말하시었다. 9-1. 子罕言利與命與仁. |
『논어』의 구절 중에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빈도가 매우 높은 유명한 장이다. 사실 편명이 여기서 ‘공자’와 ‘드물게’를 합성하여 이루어져 매우 임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편자들은 ‘공자의 드물게 멋있는 격언들’이라는 의미를 노렸을 수도 있고, 황소는 또 이미 공자의 말을 느낄 줄 아는 자들이 희소해진 말년의 쓸쓸한 느낌을 나타내준다는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욕심도 없어졌고 그래서 그만큼 공자의 경지는 높아졌고, 따라서 감응할 수 있는 자들이 적어진 분위기에서 드물게 말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튼 ‘자한’이라는 편명도 만만치는 않다.
이(利)와 명(命)과 인(仁), 이 세 가지는 모두 유자의 최고의 덕이다. 그래서 공자는 경솔히 언급하지 않았다. 말로써 함부로 규정할 수 있는 수준의 덕목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해석에 고주와 신주가 모두 일치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해석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대체로 좁은 소견에서 나오거나 후대의 관념을 덮어씌우는 데서 생겨나는 오해이지만, 우선 이(利)를 트집잡는다.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소인유어리(小人喩於利)’(4-16)라고 했는데, 어찌 이(利)가 공자가 드물게 말할 정도의 고결한 덕성이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드물게 말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부정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드물게 말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맹자(孟子)의 수준에서 격하된 의리지별(義利之別)의 관념을 가지고 이 장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라이(荻生徂徠)는 아주 그럴싸한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공자께서는 이(利)를 드물게 말하시었다. 그리고 명(命)과 더불어 하시었고 인(仁)과 더불어 하시었다.
子罕言利. 與命與仁.
아주 기발한 해석이지만 이것 또한 근원적으로 공자의 말씀을 소라이 개인의 연역적 관념에 의하여 왜곡한 것일 뿐이다. 인(仁)의 문제만 해도 공자는 너무도 많이 말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드물게 인을 말하였다고 한 것은 언급을 적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인 그 자체의 규정성이 언어의 대상이 아님을 말한 것일 뿐이다. 이(利)만 해도 그것은 인성(人性)의 가장 근원적 경향성이며 인간 존재의 문제는 어떻게 이를 추구하는 인간의 성향을 조화시키느냐에 딸린 것이다. 『역경(易經)』의 괘사가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말하고,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든가, ‘이자의지화야(利者義之和也)’, ‘이정자성정야(利貞者性情也)’ 등등의 언사가 말해주듯이 원시유학에 있어서는 이(利)가 전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이(利)와 명(命)과 인(仁)은 하나의 실상(實相)에 대한 다른 측면의 이름들일 뿐이다. 최한기와 동시대의 사상가인 심대윤(沈大允, 1806~1872)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이(利)’라는 것은 하늘이 명한 나의 본성이다【沃案, 그러니까 심대윤은 이(利)를 나의 본성에 내재하는 천명의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명(命)’이라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만나는 때의 운명이며, 태어나면서 처하게 되는 위나 환경이며, 태어나면서 품부 받은 자질 같은 것이다. ‘인(仁)’이라는 것은 충(忠)이고 서(恕)이며 중용(中庸)과 같은 내면적 덕성이다. 만약 사욕의 이(利)를 명(命)과 인(仁)의 위에다 올려놓았다면 그것은 공자의 도가 근본적으로 어긋나버리는 것이다【沃案. 그러니까 이제의 개념이 그렇게 사욕적인 이기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인의 복지 같은 것이다】. 성(性)과 천도(天命)는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근원적으로 작위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부자께서 일 상적으로는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다. 인(仁)이라는 것은 작은 선행일지라도 그것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려서 이루어가는 것이다. 선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인(仁)에는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공자가 일상적으로 자주 말하지 않은 것이다. 숨기거나, 사람들에게 일러주는 데 인색했다는 그런 뜻이 전혀 아니다. 많은 선행을 쌓아올려 인(仁)을 이루는 것은 나무재목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만약 선(善: 근본적인 나무재목)을 버리고 인(仁)을 말한다면 근본적으로 말할 건덕지조차 없는 것이다【沃案. 그러니까 공자는 한언(罕言이라 했으므로 드물게 말한 것이지 말 안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을 버리게 되면 인은 근본적으로 말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利, 天命之性也. 命, 所遇之時, 所處之位, 所稟之材也. 仁, 忠恕中庸也. 若私慾之利而加之命仁之上, 則悖矣. 性與天道, 可知也, 不可爲也. 故夫子不恒言也. 仁, 則集善而成者也. 但能行善, 則自可至也, 故不恒言也. 非有隱而吝於告人也. 集衆善而成仁, 如集材以爲室. 若舍善而言仁, 則無可言也.
소라이의 해석보다 몇천만 배 진실한 해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매우 진솔한 해석이다. 공자의 본의를 천착하고 있다.
‘한(罕)’은 드물게의 뜻이다. 정이천이 말하였다: “이(利)를 계산하게 되면 의(義)를 해치고, 명(命)의 이치는 은미하고, 인(仁)의 도(道)는 크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부자께서 드물게 말씀하신 것들이다.”
罕, 少也. 程子曰: “計利則害義, 命之理微, 仁之道大, 皆夫子所罕言也.”
정이천이 이(利)를 의(義)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파악한 것은 도학의 좁 은 소견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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