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1장 젊은 날의 초상, ‘마이너리그’ 『방경각외전』② 본문

카테고리 없음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1장 젊은 날의 초상, ‘마이너리그’ 『방경각외전』②

건방진방랑자 2021. 7. 8. 07:29
728x90
반응형

마이너리그방경각외전』②

 

 

그런 점에서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은 일종의 마이너(minor)들의 보고서다. 민옹과 김신선은 특히 튀는인물들이고, 그 밖의 경우도 대략 유사한 계열에 속한다. 마장전(馬駔傳)에 나오는 송욱(宋旭), 조탑타(趙闒拖), 장덕홍(張德弘) 등은 거리를 떠도는 광사들이고, 광문자전(廣文者傳)의 주인공 광문이는 비렁뱅이이며,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의 주인공 엄항수(嚴行首)는 서울 변두리에서 똥을 져다주면서 먹고사는 분뇨장수, 우상전(虞裳傳)의 주인공인 우상 이언진(李彦眞)은 역관 신분인 탓에 국내에서는 전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일본에서 이름을 날린 불우한 문장가다.

 

직업도 신분도 다르지만, 이들은 주류(major)에서 벗어난 소수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을 묘사하는 연암의 언어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똥을 져 나르는 엄항수가 정신적으로는 가장 고결하다고 하는 것이나 양반이 되려고 그토록 갈망하던 정선부자가 양반문서를 보고서는 당신네들이 나를 도둑놈이 되라 하시유[將使我爲盜耶]’하며 달아나는 것, 송욱(宋旭)이나 광문자(廣文者) 같은 거리의 자식들도 군자들의 위선적인 사귐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등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의 이야기는 온통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역설로 흘러넘친다. 이를테면, 언더그라운드에서 웅성거리던 마이너들의 목소리가 연암의 입을 빌려 지상을 활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흥미로운 건 아주 뒷날 탄생된 소위 허생전(許生傳)역시 탄생의 경로가 방경각외전과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열하일기』 「옥갑야화(玉匣夜話)편에 실려 있는데, 하루는 연암이 옥갑에서 비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밤 드리(밤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역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예전에 윤영(尹映)이란 이에게 들은 거부(巨富) 변씨(卞氏)와 허생(許生)의 이야기를 풀어 놓게 되는데, 그게 바로 허생전(許生傳)이다. 그 과정을 조금 살펴보기로

 

 

내 나이 스무 살(1756) 무렵, 봉원사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한 손님이 있었는데, 그는 식사를 아주 조금밖에 하지 않았으며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도인법(導引法, 도가에서 선인이 되기 위한 양생법의 하나)을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오가 되면 문득 벽에 기대앉아서 약간 눈을 감고 용호교(龍虎交, 도가의 양생법)를 하였다. 연배가 상당히 높았으므로 나는 그에게 공손히 대하였다.

余年二十時, 讀書奉元寺, 有一客能少食, 終夜不寐, 爲導引法, 至日中, 輒倚壁坐, 少合眼爲龍虎交, 年頗老, 故貌敬之.

 

그때 그가 나에게 허생의 일과 염시도ㆍ배시황ㆍ완흥군부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몇만 마디 말이 계속 이어지면서 몇날 밤을 끊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기괴하고 신기하여 모두 들을 만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이름이 윤영이라고 했다. 이때가 바로 병자년(1756) 겨울이다.

時爲余談許生事, 及廉時道裵時晃見完興君夫人, 亹亹數萬言, 數夜不絕, 詭奇怪譎, 皆可足聽, 其時自言姓: 名爲尹映,此丙子冬也.

 

 

그로부터 18년 뒤, 연암은 다시 그를 만난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얼굴은 그대로였고 발걸음 또한 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윤영임을 부인하였다. 이름을 숨기고 속세를 유희하며 구름에 달 가듯이 떠도는 존재였던 것. 결국 창작의 시공간은 다르지만 허생전(許生傳)역시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의 텍스트 구성법과 동일한 패턴을 밟고 있다.

 

소설사의 선구로 칭송받는 문제적 텍스트들은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훗날 그는 이 작품들을 습작 혹은 유희문자 정도로 치부하고, 그 가운데 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같은 작품은 스스로 없애버리기도 했지만, 마이너리그는 문학사적 성취 여부와는 별개로, 연암의 글쓰기가 향하는 방향 및 잠재적 폭발력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