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프롤로그 - 편력: 운명적 해후 본문

카테고리 없음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프롤로그 - 편력: 운명적 해후

건방진방랑자 2021. 7. 7. 11:07
728x90
반응형

편력

 

 

그들’(!)과의 만남 이후 나는 그간 철의 강령처럼 지니고 다녔던 근대, 민중, 민족이라는 척도를 놓아버렸다. 마지막으로 문학이라는 척도까지. 이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근대주의라는 목적론의 산물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조차도 궁극적으로는 그 필드(field)’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뼈아프게 확인해야 했다. 근대성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편력이 시작되었다. ‘탈 근대혹은 근대 외부라는 새로운 화두를 들게 되면서 삶과 지식 혁명과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위로서 80년대를 통과한 친구들을 만나 집합적 관계를 구성하면서 분과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횡단을 감행하게 된 것. 80년대에 혁명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혁명은 나의 지식과 일상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과 같은 존재였다. 그 이후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라는, 좀 길지만 아무 데서나 끊어 읽어도 무방한 이름을 가진 지식공동체가 내 삶의 거처가 되었다. 처음 수유리에서 시작하여 지금 대학로 한복판에 오기까지 나는 이 필드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온갖 지식의 향연에 참여하였다. ’세계는 넓고 공부할 건 정말 많구나!’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이게 그동안 내가 터득한 삶의 지혜다(이후 수많은 변전을 거쳐 지금은 <남산강학원감이당>이 내 활동의 거처가 되었다).

 

그 인연조건에 의해 2001년 봄 마침내 열하일기를 만났다! 당시 연구실 멤버들이 문학계간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창간호에 동서양의 외부자들을 다루는 특집을 꾸미게 되었다. 카프카, 루쉰, 이상, 박지원 등 한 시대를 주름잡은 거물급(?) 작가들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순전히 고전문학 전공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박지원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런 걸 들뢰즈/가타리의 용어로 배치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일 터, 그런 점에서 나와 박지원의 만남은 연구실의 지적 실험과 집합적 관계에 의해 벌어진 일대사건이었다. 생각하면, 참 신기하기 짝이 없다. 고전문학 연구자이면서, 그것도 18세기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내가 정작 학교에 몸담고 학위논문을 쓸 때는 읽을 필요도, 엄두도 내지 않고 방치했던 그 텍스트를 긴 우회로를 거쳐 만나게 되다니! ‘운명적인 해후!’

 

그렇게 외적 강압(?)에 의해 집어든 열하일기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어떤 텍스트하고도 견주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그동안 내가 학습한 표상체계로는 도저히 해독 불가능한, 일종의 기계였다. 거기에 담긴 것은 스쳐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이질적인 사유들이 충돌하는 장쾌한 편력이자 대장정이었다. 파노라마적 관광도 아니고, 정처없이 떠도는 유랑도 아닌, 마주치는 것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공간적 편력, 그래서 그것은 더 이상 여행이라는 이름으로도, 편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릴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오직 유목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