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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2장 탈주ㆍ우정ㆍ도주, 분열자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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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2장 탈주ㆍ우정ㆍ도주, 분열자②

건방진방랑자 2021. 7. 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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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자

 

 

연암은 단지 제도의 부조리를 풍자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아수라장에서 간신히 벗어나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으면서 후회막심해하는 표정이 생생하게 손에 잡힐 듯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러하다면, 이미 십대 후반 입신양명의 문턱에서 과거알레르기 증후군을 앓았던 그로서는 체질적 거부반응이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설령 과거제도가 제대로 시행된다 해도, 그는 무엇보다 고정된 하나의 틀로 천만 편의 똑같은 글을 찍어내는바로 그 과문(科文)을 참을 수 없었다. “사마천(司馬遷)과 반고가 다시 살아난대도 /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진 않으리라고 하여 고문을 답습하는 문풍을 격렬히 조롱했던 그가 까다롭기 그지없는, 게다가 다만 격률의 완성도만 테스트하는 과문의 구속을 어찌 참을 수 있었으랴. 아니, 더 나아가 관료로서의 진부한 코스를 어찌 선택할 수 있었으라. 어떻게든 과거에 입문시키려는 주최측의 그물망을 피해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포획과 탈주, 이후에도 이런 시소 게임은 계속된다. 뒤늦게 음관(蔭官)으로 진출했을 때, 음관들을 위한 특별 시험을 실시하면서 한 사람도 빠지지 말라는 왕명이 있었음에도 그는 근무지인 경기도 제릉으로 날쌔게달아난다. 과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시험을 치르게 하여 관료로 진출시키려는 포섭의 기획을 계속 와해시켰던 것이다. 말하자면 연암은 흔히 떠올리듯, 원대한 뜻을 품었으나 제도권으로부터 축출당한 불운한 천재가 아니라, 체제의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국가장치로부터 끊임없이 클리나멘(clinamen)’을 그으며 미끄러져 간 유쾌한 분열자였던 것.

 

그렇다면 시짓기에 그토록 인색했던 까닭에 대해서도 대충 감이 잡힐 듯하다. 그는 사실 매우 뛰어난 시인이었다.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고[총석정관일출, 叢石亭觀日出]를 비롯하여 남아 있는 작품들은 그 기상이나 수사학이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나다. 그런데도 그가 시를 멀리한 이유는 알고보면 꽤나 단순하다. “그 형식적 구속 때문에 가슴속의 말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없음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엘리트 집단의 공통 문법이자 문화적 징표인 한시의 형식도 견디지 못했던 연암, 거기에는 어떤 명분이나 사회적 이유를 떠나 태생적으로 탈코드화기질적 속성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만년에 자식들에게도 과거로 출세하기를 바라지 말라고 당부했고, 실제로 자식의 영달에도 무심했다. 그와 관련한 흥미로운 삽화 하나. 한번은 아들이 정시를 보는 날이었는데, 그때가 마침 연암골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친지들은 모두들 틀림없이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시험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암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도 일절 마음의 동요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그는 원초적으로 비정치적인’, 아니 권력 외부를 지향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이 사람의 탈주를 막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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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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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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