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4장 그에게는 묘지명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② 본문

카테고리 없음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4장 그에게는 묘지명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②

건방진방랑자 2021. 7. 8. 14:58
728x90
반응형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

 

 

본격적인 레퀴엠을 듣기 전에 가벼운 아리아 한 곡조..

 

 

我兄顔髮曾誰似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每憶先君看我兄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今日思兄何處見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
自將巾袂映溪行 두건 쓰고 옷 입고 가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

 

 

연암협 시냇가에서 읊은 연암에서 선형을 생각하다(燕岩憶先兄)라는 시다. 마치 동시인 듯, 민요인 듯 담백한 말투에 깊은 속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덕무(李德懋)는 연암의 시를 읽고 두 번 울었다고 했다. 하나는 바로 이 시이고, 또 하나는 연암이 큰누이의 상여를 실은 배를 떠나보내며 읊은 다음 시이다.

 

 

去者丁寧留後期 떠나는 이 정녕히 다시 온다 다짐해도
猶令送者淚沾衣 보내는 이 눈물로 여전히 옷을 적실 텐데
扁舟從此何時返 조각배 이제 가면 어느제 돌아오나
送者徒然岸上歸 보내는 이 헛되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이 시는 맏누님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에 실려 있다. 떠나는 이는 누이의 상여를 메고 가는 매형을, 보내는 이는 그 매형을 전송하는 연암 자신을 말한다. 연암산문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潘南)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 중미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신묘년 9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이 아곡인지라, 장차 서향의 언덕에 장사지내려 한다.

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孺人十六, 歸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鵶谷’, 將葬于庚坐之兆.

 

 

여기까지는 고인과 자신의 관계, 가족, 죽음, 장례에 대한 간략한 터치다. 보통 그 다음에 고인의 생애에 대한 상투적인 나열과 덕행의 예찬으로 이어지는데, 연암은 놀랍게도 상여가 떠나는 현장을 생방송처럼 중계한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길이 막막하자, 어린것들과 계집종 하나, 솥과 그릇, 옷상자와 짐 궤짝을 이끌고 강물에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더불어 함께 떠나가니, 내가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가운데서 이를 전송하고 통곡하며 돌아왔다[伯揆旣喪其賢室, 貧無以爲生, 挈其穉弱婢指十, 鼎鎗箱簏, 浮江入峽, 與喪俱發. 仲美曉送之斗浦舟中, 慟哭而返]”는 식으로.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간 누이가 이 가난한 집안을 꾸리느라 겪었을 온갖 고생살이가 떠올라, 마음이 저으기 애달프다. ‘가장 아닌 가장인 누이가 죽자 매형은 살림살이를 챙겨 산골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살림살이래야 단촐하기 이를 데 없다. 누이를 그토록 고생시킨 매형에 대한 원망이 없다면 거짓일 터, 행간 사이로 그 애환이 아련하게 전해져 온다.

 

그 다음, 통곡하는 연암의 얼굴에 28년 전 누이와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 슬프다!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런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버릇없이 드러누워 말처럼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이 나서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댔다. 누님은 옥압(玉鴨)과 금봉(金蜂)을 꺼내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달랬는데,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 해가 되었구나!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余時方八歲, 嬌臥馬𩥇, 效婿語口吃鄭重. 姊氏羞, 墮梳觸額, 余怒啼, 以墨和粉, 以唾漫鏡. 姊氏出玉鴨金蜂,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어린 남동생의 심술과 장난, 그것을 따스하게 받아주는 누이, 비통한 죽음 앞에서 이런 정경을 떠올리는 연암의 마음은 아직도 여덟 살 소년의 그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심술을 부리는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눈물과 웃음이 뒤엉켜 가슴이 더욱 미어진다.

 

그럼, 이 대목에서 하필 그 추억이 떠올랐을까? 연암의 해명은 이렇다.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 위에 꿈틀거렸다.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가더니 가리워져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立馬江上, 遙見丹旐翩然, 檣影逶迤, 至岸轉樹隱不可復見. 而江上遙山, 黛綠如鬟, 江光如鏡, 曉月如眉]” 같았다고.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했노라고. 하긴 누이가 시집간 뒤에야 누이는 곤궁한 살림살이를 꾸려가느라, 동생인 연암은 연암대로 자기의 길을 가느라 분주했을 터이니, 남매가 오손도손 마주할 기회조차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의 길이 엇갈리던 시집가는 날의 추억이 가장 생생할밖에, 스물여덟 해 전의 추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간직하고 있는 것도 감동적이지만, 그것을 죽음 앞에서 오롯이 드러내는 그 진솔함이야말로 이 글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든 비결일 것이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