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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4장 그에게는 묘지명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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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4장 그에게는 묘지명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③

건방진방랑자 2021. 7. 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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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

 

 

맏누님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이 잔잔하면서도 애잔한 화음으로 구성된 서정적 비가(悲歌)에 속한다면, 평생의 지기 홍대용(洪大容)의 묘지명은 굵직한 터치, 낮은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홍덕보묘지명은 여러 방식의 언표 배치가 중첩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덕보(홍대용)가 세상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난 후에 어떤 사람이 사신 행차를 따라 중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행로가 삼하(三河)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삼하에는 덕보의 벗이 있으니, 이름은 손유의(孫有義)이고 호는 용주(蓉洲)이다[德保歿越三日, 客有從年使入中國者, 路當過三河. 三河有德保之友曰: 孫有義號蓉洲].” 연암이 바로 전해 북경에 들어갔을 때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인물이다. 연암은 중국 가는 사람 편에 홍대용의 중국인 친구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고 있다. 금년 1023일 유시에 갑자기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 원은 통곡 중이라 정신이 혼미하여 대신 자신이 글을 올리니 부디 절강(浙江)에 두루 알려 죽은 이와 산 사람 사이에 한이 없게 해달라고.

 

왜 절강인가? 이미 밝혔듯이 거기는 바로 홍대용(洪大容)의 세 친구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홍대용은 연암에 앞서 숙부를 따라 중국기행을 다녀왔다. 그때 유리창(琉璃廠)에서 육비, 엄성, 반정균 등을 만나 수 만 마디의 필담을 나누면서 깊은 정을 쌓았다. 짧은 만남 뒤의 긴 이별! 단 한 번의 만남이었음에도 이들의 정은 말할 수 없이 돈독하여 그간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10여 권에 달하였다.

 

담담하게 친구의 죽음을 전하던 연암의 필치는 이들과의 교유를 다루면서 더 한층 웅숭깊어진다. 특히 클라이맥스가 홍대용과 엄성의 기이한 인연에 대한 것이다. 홍대용은 세 선비 가운데 특히 엄성과 의기투합하여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엄성은 복건(福建)에서 병이 위독하게 되자, 홍대용이 준 조선산 먹과 향기로운 향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먹을 관 속에 넣어 장례를 치렀는데, 절강의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다투어서 시문을 찬술했다 한다. 반정균이 그 부고를 홍대용에게 알렸고, 홍대용은 이에 제문과 향을 부쳤는데, 그것이 도착한 날이 마침 엄성이 죽은 지 3년째 되는 대상(大祥)날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경탄하면서 명감(冥感)이 닿은 결과라고 하였다. 지극히 사랑한 친구의 죽음 앞에서 이렇듯 연암은 그의 삶을 이 세 친구들과의 국경을 넘는 우정으로 압축한 것이다. 족보니, 관직이니, 덕행이니 하는 따위는 그저 껍데기요. 지리한 나열에 불과하다고 여긴 것일까. 어떻든 이 묘지명 또한 연암산문의 정수이자 18세기가 낳은 명문이다.

 

그러나 연암의 묘지명들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시대의 통념과 충돌했다. 연암의 처남이자 벗이었던 이재성(李在誠)은 연암의 큰누이 묘지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마음의 정리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지극한 예라 할 것이요, 의경을 묘사함이 참 문장이 된다. 글에 어찌 정해진 법식이 있으라! 이 작품은 옛사람의 글로 읽으면 마땅히 다른 말이 없을 것이나, 지금 사람의 글로 읽는다면 의심이 없을 수 없으리라. 원컨대 보자기에 싸서 비밀로 간직할진저[緣情爲至禮, 寫境爲眞文. 文何甞有定法哉? 此篇以古人之文讀之, 則當無異辭, 而以今人之文讀之, 故不能無疑, 願秘之巾衍].”

 

이건 또 웬 봉창 두드리는소린가? 참된 문장이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니! 요컨대 연암의 묘지명들은 매혹적인 만큼이나 불온한것이었다.

 

잠깐 덧붙일 사항 하나. 연암처럼 태생적으로 밝고 명랑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운 장송곡을 썼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뜻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슬픔의 밑바닥을 본 자만이 유쾌하게 비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빛나는 명랑성과 깊은 애상은 상통하는 법, 니체의 아포리즘(aphorizm)을 빌리면 산정과 심연은 하나다.

 

과연 그렇다. 앞서도 음미했듯이, 그의 묘지명들은 슬픔을 과장하지도 생경하게 토로하지도 않는다. 죽음을 그리는 그의 목소리는 때론 경쾌하고 때론 느긋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그 여운은 깊은 울림으로 삶과 사유를 변환시킨다. 그런 역설이야말로 그의 원초적 명랑성이 지닌 저력이다. 다시 니체 식으로 말하면, ‘심해(深海)를 항해하고 돌아온 자만이 발산할 수 있는 강철 같은 명랑함’, 바로 그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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