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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2장 열하로 가는 ‘먼 길’, 비약과 단절의 연암식 기법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2장 열하로 가는 ‘먼 길’, 비약과 단절의 연암식 기법

건방진방랑자 2021. 7. 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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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과 단절의 연암식 기법

 

 

열하로 가는 길은 연경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하다. 지리지에는 450여 리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700, 그것도 험준한 산과 물을 수도 없이 지나야 하는 코스다. 길은 멀고 일정은 빠듯한지라 인원을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했다. 연암은 비공식수행원이라 가도 되고 안 가도 상관없는 처지다. 그래서 연암은 머뭇거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요해의 땅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북경에 남아 이국(異國)의 친구들을 사귈 것인가. 정사이자 삼종형인 박명원은 그에게 중국에 온 뜻을 되새기면서 이번 길이야말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라며 꼭 가야 한다고 충고한다[汝萬里赴燕爲遊覽 今此熱河 前輩之所未見 若東還之日 有問熱河者 何以對之 皇城人所共見 至於此行 千載一時 不可不往]. 연암도 그 결정에 따른다.

 

이 과정은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이때야말로 연암의 생애, 아니 18세기 지성사의 새로운 획이 그어지는 클리나멘(clinamen)의 순간이다. 만약 연임이 그냥 북경에 남았더라면? 물론 그것만으로도 연암의 연행록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을 테지만, 그것이 주는 충격과 효과의 진폭은 비교적 평이했을 것이다. 그만큼 연암과 열하의 만남은 천고에 드문 마주침이라 할 만하다.

 

사람과 말을 점고(點考)해보니, 사람은 발이 모두 부르트고, 말은 여위고 병들어서 실로 대어갈 것 같지가 않다. 이에 일행이 모두 마두를 없애고 견마잡이만 데리고 가기로 하여, 연암도 하는 수 없이 장복이를 떨어뜨리고 창대만 데려가기로 했다[人皆繭痡 馬盡尩羸 實無得達之望 行中皆除馬頭 只帶控卒 余亦不得已落留 張福獨與昌大行]. ‘환상의 2인조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기는 하나, 그래도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왔는데, 막상 떼어놓으려니 연암의 가슴이 미어진다. 장복이는 또 어떤가. 머나먼 이국땅에서 미운정 고운 정다 든 두 사람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창자가 끊어질 듯이 서러워한다.

 

 

장복은 말 등자를 붙잡고 흐느껴 울며 차마 손을 놓지 못한다. “장복아, 울지 말고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내가 이렇게 타이르자 다음에 창대의 손목을 잡고 더욱 구슬피 우는데, 눈물이 마치 비 오듯 한다.

張福執鐙 悲咽不忍捨 吾喩令辭還 則又執昌大手 兩相悲泣 淚如雨下

 

 

연암은 문득 말 위에서 생각한다. “인간사 중에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서 생이별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念人間最苦之事 莫苦於別離 別離之苦 莫苦於生別離].”. 하나는 살고 또 하나는 죽는 그 순간의 이별이야 구태여 괴로움이라 할 것이 못 된다. 그거야 사람마다 겪는 것이고, 천하의 순리가 아닌가. 또 죽은 이에겐 괴로움이 없을 터. 그러나 하나는 가고 하나는 떨어질 때, 그것도 흘러가는 물을 사이에 두고 헤어질 때의 그 애달픔을 무엇에 비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연암의 이별론이 시작된다. 어떤 소재든 그에 알맞은 리듬과 악센트를 부여하는 것이 연암의 장기 아니던가.

 

장복이와 이별하는 장면에서 시작된 이별론은 어느 사이 평양의 배따라기곡에 대한 해설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왔던 소현세자(昭顯世子)와 조선 사신단 일행 사이의 이별장면으로 변주된다. 소현세자는 효종의 형으로 오랫동안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으면서 청문명의 정수를 배우려고 애쓴 인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귀국하자마자 아버지 인조와 불화하면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소현세자의 생애 전반에 드리운 비운의 그림자를 떠올려서였을까. 이 대목에 이르면 연암은 이제 장복이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상념에 도취되어 격정적으로 흐느끼기 시작한다.

 

 

당시 처지가 곤궁하고 위축된 것이 매우 심하고 의심스러워 꺼려지는 것이 너무 깊어서 눈물을 참고 소리를 삼키며 얼굴에 참담함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그 심정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당시 남아 있는 신하들이 떠나가는 이들을 멀리서 바라볼 때 요동벌판은 끝없이 펼쳐지고 심양의 우거진 나무들은 아득한데, 사람은 콩알만큼 작아지고 말은 지푸라기처럼 가늘어져 눈길이 닿는 곳에 땅의 끝, 물의 끄트머리가 하늘에 잇닿아 그 경계가 사라져버리고, 해는 저물어 관문을 닫아걸 때 그 애간장이 어떠했을꼬 (중략)

當時臣僚去留之際 使价往來之時 何以爲懷 主辱臣死 猶屬從容 何留何去 何忍何捨 此吾東第一痛哭時也 嗚呼痛哉 蟣蝨微臣 試一念之於百年之後 猶令魂冷如烟 骨酸欲摧 而况當時離筵拜辭之際乎 而况當時畏約無窮 嫌疑旣深 忍淚呑聲 貌藏慘沮者乎 而况當時從留諸臣之遙望行者 遼野茫茫 潘樹杳杳 人行如荳 馬去如芥 眼力旣窮 地端水倪 接天無垠 日暮掩館 何以爲心 (중략)

 

저 화려한 기둥에 채색한 문지방이나 봄날의 푸르고 맑은 날씨라 해도 애달픈 이별의 풍경이 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雖畵棟綉闥 春靑日白 盡爲吾別離之地 盡爲吾痛哭之時

 

 

그런데 아뿔사! 멋진 이별론을 펼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에 몰두하느라 연암은 엉뚱한 길로 들어서버렸다. “해는 이미 저물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수레바퀴를 쫓아간다는 것이 서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벌써 수십 리나 돌림길을 걸었다[日旣暮 迷失道 誤追車跡 迤西益行 已迂數十里矣 ].” 게다가 양편 옥수수가 하늘에 닿을 듯 아득하고 길은 함 속에 든 것 같은데, 웅덩이에 고인 물이 무릎에 빠지며 물이 가끔 스며 흐르는 바람에 구덩이를 파놓았어도 물이 그 위를 덮어서 보이지 않는다[左右薥黍 接天微茫 路如凾中 而停水沒膝 水往往洄洑 鑿爲坑坎 而水被其上 不可見也].” 사태가 이러니, 따라 잡느라 죽을 고생을 다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마음껏 상념에 젖어도 좋을 만큼 길이 녹록지 않았던 것이다.

 

이 대목도 갈 데 없는 한편의 시트콤이다. 생각해보라. 이별은 생이별이 가장 슬프다느니, 그것도 강에서 이별을 해야 제격이라느니, 배따라기가 어떻고, 소현세자가 어떻고 하면서 비장한 테마뮤직이 흐르다가 느닷없이 길을 잘못 들어 좌충우돌하며 따라잡는 꼴이라니. 하지만 이런 식의 비약과 단절이야말로 연암식 기법의 진수다. 판소리로 치면, 긴장과 이완의 변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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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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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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