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윤리학적 태도에 있어서도 그들은 전혀 달랐다. 연암이 ‘우도(友道)’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데 비해, 다산은 ‘효제(孝悌)’를 일관되게 주창한다. 다산에게 있어 효제는 독서의 근본이자 수행의 근간이다. 고정된 의미화를 거부하는 연암의 철학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우정의 윤리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에 반해 주체의 명징성을 강조하는 다산에게는 우정보다는 ‘효제’라는 가치를 실천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더 절실했던 것이다. 물론 이 차이는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행로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연암에게는 벗의 사귐이 일상의 요체였지만, 다산의 인맥은 대체로 가문과 당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전자의 경우, 중심적인 가치로부터 벗어나 상하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했고, 따라서 그것은 당연히 우정이라 이름할 수 있는 관계들의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후자는 이미 젊어서부터 국왕의 총애를 받았고, 한평생 국왕과 중앙 정계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으며, 유배지에서도 아들들의 학문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목민과 정주민 ―― 연암과 다산은 이토록 이질적이고 상이한 계열의 존재들이다.
끝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연암과 다산은 동시대인이다. 게다가 둘다 정조시대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들이다. 문체반정(文體反正)시에는 양극단에서 맞서기도 했다.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정철조(鄭喆祚) 등 연암의 절친한 벗들과 다산은 직간접으로 교류를 나누었다.
그런데 둘은 어떤 교류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몰랐을 리는 없다. 절대로! 둘 사이에 있던 정조가 연암의 사소한 움직임까지도 체크했는데,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다산이 어떻게 연암의 존재를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침묵했다!
평행선의 운명을 아는가? 두 선분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다만 서로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갈 뿐, 하지만 그들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평행선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절대 헤어질 수도 없는 기이한 운명! 아, 연암과 다산은 마치 평행선처럼 나란히 한 시대를 가로지른 것인가?【개정신판 책머리에서도 밝혔듯이, 이때의 질문이 스스로 증식, 산포되어 마침내 2013년여름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로 출간되었다.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두 사물을 같은 것으로 보려고 마음먹는다면, 어떤 것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야 말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자주 인용하는 대승불교 지도자 ‘나가르주나(용수)’의 말이다. 그간 연암과 다산을 비롯하여 중세적 가치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로 그와 같지 않았을까? 동일성에 대한 집착 혹은 차이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 근대적 합리성의 실체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지. 이런 강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조선 후기는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웅성거리는 ‘지적 향연’의 장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일 것이다.
연암과 다산의 차이는 단지 그 서곡에 불과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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