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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의 죽음
이 점에서 보면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를 산 경허의 삶은 돋보이는 것이 있지요. 바로 경허처럼 단단한 학식, 그것도 한학의 기초를 다진 스님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경허는 세칭 이단비도(異端非道)의 스님, 막행막식의 선승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경허처럼 무서운 학승이 없고, 그의 싯구에 담긴 한학의 소양은 그저 흉내만 내는 스님들의 화려함이 미칠 수 없지요. 경허가 64세(1912년) 함경도 삼수갑산 도하동 어느 글방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어갔을 때, 그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인 만공이 이렇게 읊었어요.
遷化向甚麽處去 천화향심마처거 |
아~ 우리 선생님이 가셨다니 어디로 가셨을꼬 |
酒醉花面臥 주취화면와 |
아~ 술에 취해 꽃밭에 반드시 누워계시겠지 |
물론 경허는 술 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여기 술에 취했다 하는 것은, 경허 실존의 무서운 고독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중생의 미망으로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신 방편의 술이며, 꽃밭 또한 스스로 선택한 가시밭길을 가리키고 있어요. 운명한 시신의 저고리 속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해요.
三水甲山長谷裡 삼수갑산장곡리 |
삼수갑산의 깊은 계곡 속에 |
非僧非俗宋鏡虛 비승비속송경허 |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송경허라는 놈이 누워있을 것이다. |
故鄕千里無人便 고향천리무인편 |
그리운 고향은 천리길이나 되고 소식 전할 인편 또한 없도다 |
別世悲報付白雲 별세비보부백운 |
이 세상을 하직했다는 슬픈 소식일랑 저기 떠 있는 저 흰 구름에 띄우노라 |
너무도 소박한, 스님의 내음새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자기 일생의 느낌을 다 담은, 참으로 맑은, 우리나라 우전차(火前茶)와도 같이 향기로운 임종시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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