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송동욱
조선조 말기에 서산의 맥을 이은 자로서 참으로 존경스러운 한국불교의 거목이 한 분 태어납니다(편양언기鞭羊彦機 계열이다). 경허(鏡虛, 1849~1912)라는 문제인물로 인해 조선불교의 선풍이 크게 진작되게 되죠. 경허는 헌종 15년(1849년 기유己酉: 일지一指는 1846년 병오丙午설을 주장. 나는 방한암의 「선호경허화상행장先呼鏡虛和尙行狀을 따른다) 전라북도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여산 송씨 두옥(斗玉)을 아버지로, 밀양 박씨를 어머니로 해서 태어났는데 분만 후 사흘 후에나 울음이 터졌다고 합니다. 다음 해는 헌종이 죽고, 강화도에서 나무꾼 노릇을 하던 강화도령 이원범이 왕위에 오르죠.
이 강화도령 철종의 시대야말로 우리민족이 근대를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이 방치되어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하였습니다. 안동 김씨 시파계(時派系) 일문의 독재로 세도정치의 온갖 병폐가 극심해지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경허의 아버지 송두옥은 너무도 가혹하고 너무도 억울한 탐관오리 세금 착취에 홧병을 참지 못하고 경허(동욱東旭) 나이 8세 때 세상을 뜨고 맙니다. 평소 깊은 불심을 지닌 어머니 밀양 박씨는 두 아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자신도 불문에 들어가 공양주보살로 살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경허는 아홉 살 때(1857년) 경기도 시흥 청계산(서울구치소가 있는 그 산골로 깊게 들어간다) 청계사 계허(桂虛) 스님 문하에 들어가 행자생활을 시작합니다.
동욱이는 몹시 영리했고, 기골이 강해 건강했고, 무한한 지적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계허 스님은 인품이 좋은, 덕의로운 사람이었으나 학식이나 선경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동욱이의 향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스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계허는 동욱의 지적 성장에 중요한 계기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우선 행자 동욱에게 예기치 못했던 행운이 닥칩니다. 우연히 ‘박 처사’라고만 알려진 백면서생 한 명이 휴양차 청계사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문학(問學, 학문의 본 뜻)에 뜻을 둔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 바로 지적 꽃망을이 탁 터지려고 할 때, 바른 선생, 큰 스승을 만난다는 것처럼 큰 행운은 없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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