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중궁은 자질이 있기에 쓰일 것이다
6-4, 공자께서 중궁(仲弓)을 평하여 말씀하시었다: “보통 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어 아름답고 각진 뿔이 웅장하다면 사람들이 제물로 쓰지 않고 내버려 두어도, 산천의 하느님께서 어찌 그것을 내버려 두겠느냐?” 6-4. 子謂仲弓曰: “犂牛之子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 |
남면할 만하다고 평한 중궁에 관하여서는 본 편 첫머리(6-1)에서 설진(說盡)하였다. 중궁은 염옹(冉雍)의 자(字)이다. 염웅은 앞서 말했지만 비천한 집 안의 소생이다. 따라서 ‘황소의 새끼[리우(犂牛)]’로 비유한 것은 그 천한 소생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공가(公家)에서는 제물로 쓰는 특별한 소를 길렀다. 그러나 그러한 소가 모자랄 때에는, 민가에서도 털에 붉은 기가 돌며 뿔이 아주 크게 잘 생긴 소를 선택하여 제물로 썼던 것이다. 이러한 당대의 풍습에 비유하여 인재의 선용(用)을 운운한 공자의 언급은 매우 감동적이다. 공자는 인재의 등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신분의 귀천을 타파하고 오직 능력본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간에 파묻혀 있는 능력있는 젊은이들에게 발하는 희망과 격려의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여기 황소의 이미지는 제물로 희생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제(大祭)에 선택 되어 쓰인다고 하는 소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맥락을 잘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산천(山川)’은 ‘산천의 하느님’을 가리킨다. 이것은 흔한 잡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성(Holiness), 신성 일반(Divinity)을 가리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 존재는 타자(the Other)일 수밖에 없으며, 타자는 일자(the One)일 수밖에 없다. 일자는 다자(the Many)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한다. 공자는 산천을 말하며 역사의 신(God of History)을 말한다. 한 인물의 내면적 가능성은 결국 역사의 신이 관장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인들이 버리고 가리고 무시하려 해도 역사의 신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인간의 운명을 초월하는 힘에 대한 확신을 통하여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하는 공자의 신비롭기까지 한 신념은 서구인들의 자의적인 감정체인 인격신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다신론과 유일신론, 저등종교와 고등종교, 종교와 비종교, 역사의 세계와 신의 세계의 어리석은 분별을 이야기해서는 아니 된다.
‘犂’는 리지(利之) 반이다. ‘騂’은 식영(息營) 반이다. ‘사(舍)’는 상성이다. ○ ‘리(犂)’는 여러 가지 무늬가 섞인 것이다. ‘성(騂)’은 붉은 색깔이 도는 것이다. 주나라사람이 붉은색을 숭상하여 희생으로 붉은 소를 썼다. ‘각(角)’은 소의 뿔이 골고루 바르게 생긴 것이며 희생의 규격에 맞는 것이다. ‘용(用)’이란 그것을 써서 제사지낸다는 뜻이다. ‘산천(山川)’은 산천의 하느님(神, God)이다. 이 장의 대의는 사람이 그를 쓰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궁의 아비는 천했고 악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부자께서는 이 소의 경우를 가지고 비유하신 것이다. 아비의 불선이 그 자식의 선함을 폐할 수 없으며, 중궁과 같은 현자는 스스로 마땅히 세상에 쓰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첫머리에 ‘자위중궁왈(子謂仲弓曰)’이라고 한 것은 중궁을 평론하여 말씀하시었다는 뜻이지, 중궁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었다는 말은 아니다.
犂, 利之反. 騂, 息營反. 舍, 上聲. ○ 犂, 雜文. 騂, 赤色. 周人尙赤, 牲用騂. 角, 角周正, 中犠牲也. 用, 用以祭也. 山川, 山川之神也. 言人雖不用, 神必不舍也. 仲弓父賤而行惡, 故夫子以此譬之. 言父之惡, 不能廢其子之善, 如仲弓之賢, 自當見用於世也. 然此論仲弓云爾, 非與仲弓言也.
‘리우(犁牛)’에 관해서는 얼룩소, 황소, 그냥 농경용의 보통 소라는 등등의 설이 있으나 결국 천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천한 가운데 귀함이 있다는 것을 공자는 항상 믿었다.
○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고수(瞽瞍)【순임금의 아비로 선악의 구별이 없는 어리석은 인간이었다】를 아버지로 두었어도 순이 있고, 곤(鯀)【하나라 시조 우임금의 아버지, 사흉(四凶)의 한 사람으로 처단됨】을 아버지로 두었어도 우가 있다. 옛부터 성현은 족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아들이 능히 아비의 잘못을 고칠 수 있고 추함을 변화시켜 아름다움으로 만든다면 효(孝)라고 말할 수 있다.”
○ 范氏曰: “以瞽瞍爲父而有舜, 以鯀爲父而有禹. 古之聖賢, 不係於世類, 尙矣. 子能改父之過, 變惡以爲美, 則可謂孝矣.”
범순부의 마지막 말이 좀 과하다. 어찌 아들이 아비의 잘못을 고칠 수 있고, 아비의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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