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동학사에 오다, 구척 장신의 강백
경허가 천리길을 걸어 동학사에 당도한 것은 1862년 바람결이 쌀쌀한 늦가을이었습니다. 만화 스님은 몇 마디 건네보고 동욱이가 진실로 큰 그릇임을 알아차리지요. 만화 스님은 아낌없이 동욱에게 불교경전의 묘리를 다 가르칩니다. 동욱이는 『능엄경』, 『대승기신론』, 『금강경』, 『화엄경』, 『묘법연화경』, 우리나라 불교의 소의경전이며 대승의 교리를 집대성한 『원각경」, 선문의 공안을 집대성한 『선문염송』 등을 다 깨우치고, 강원의 대교과(大敎科)에 이르는 4단계의 교육과정을 예리한 기억력과 한학의 소양에 힘입어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모두 마칩니다.
경
허가 동학사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지 9년째, 스물세 살의 경허는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 되었고, 학승으로서, 그리고 경지가 깊은 선승으로서 두루 모자람이 없었지요(보통 경허를 ‘구척九尺’이라 표현하는데, 정확한 치수를 알 수는 없다. 키가 1미터 90 이상인 것 같다. 공자를 연상케 하는 거구의 사나이였다). 만화 스님은 위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경허를 자기 대를 잇는 수좌강백(首座講伯)으로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1871년부터 경허는 동학사의 강백이 되어 이름을 떨칩니다. 그의 『금강경』 강론은 너무도 유명하여 사방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몰려들었고, 동학사 강원에는 70명이 넘는 학인들이 늘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의 강론은 명료했고 심오했으며 구세의 열정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1879년, 서른한 살이 된 경허는 불현듯 환속한 스승 계허 스님을 찾아뵙고 싶은 생각이 일었습니다. 만화 스님께 허락을 구하였습니다. 만화 스님은, 비록 환속했지만 경허를 알아보고 키운 최초의 인물이 계허요, 또 다 성장한 경허가 스승을 잊지 못하고 찾아뵙겠다는 삶의 자세가 기특하여 기꺼이 허락하지요. 더구나 계허는 그의 친구였습니다. 경허는 동학사를 가뿐한 걸음으로 나섭니다. 처음 동학사 문깐에서 부들부들 떨고 서있던 것이 14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로 17년 만에 동학사를 나서는 것이죠. 당대 조선 최고의 강백이 되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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