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 윤회사상과 적선지가, 향아설위
경허의 말에 강 부자는 감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허의 말은 진정성이 배어있어 타인을 설득하고 굴복시키는 힘이 있었지요. 빈 제사 상에 울려퍼지는 독경소리는 더욱 그윽하고 성스러웠습니다. 49재를 기쁜 마음으로 올리고 난 강 부자는 경허에게 시주를 위해 돈보따리를 내어놓았습니다.
“대사님 법문 덕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극락왕생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그 보답으로 시주를 더 내놓고 가겠습니다.”
“절간에 재물이 쌓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외다. 이 돈으로 인근 30리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시는 것이, 훗날 강 선생님께서 극락왕생하시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사님, 저도 이 천장사 부처님께 시주를 해서 복을 좀 지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머슴살이 하는 김 서방, 이 서방, 농사짓고 사는 박 첨지, 서 첨지, 이들이 다 부처님이오이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께 시주하는 것과 똑같은 것,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
49재란 원래 인도에 있던 습속이 아닙니다.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불교의 윤회사상과 유교의 조상숭배(ancestor worship)사상이 절충된 것입니다. 인도 본래의 사상에서는 윤회의 업보는 오직 그 개인 본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죠. 따라서 자손의 효행에 영향을 받을 수도 없고 또 그 업보가 후손에게 전가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런 개인주의는 너무 차가워서 별 재미가 없어요. 공동의 업보와 공동의 윤회가 게마인샤프트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공동사회)적인 동양문화권에서는 더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죠. 『주역』 곤괘 「문언」에 있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을 쌓는 집안에는 그 집안 전체에 좋은 일이 넘친다)이라는 말이 그러한 관념을 대표하지요.
여기 경허의 말은 기실 동시대의 사상가 해월의 ‘향아설위(向我設位)’와도 상통하는 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경허의 형님이나 모친의 입장에서는 강 부자의 시주금이 얼마나 아쉬웠겠습니까마는 경허의 태도는 근원적으로 반체제적, 반제도권적(anti-institutionalistic)이라고 말할 수 있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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