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등주와 도일체고액과 능제일체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말합니다. ‘지(知)’는 전체에 걸리는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알지어다. 다음의 사실들을 …… ’하는 식의 구문이지요. 영어로 말하자면 ‘Therefore you should know that ……’과 같은 식이지요. 무엇을 알아야 하나요? 반야바라밀다야말로 위대하게 신령스러운 주문이며, 위대하게 밝은 주문이며, 그 이상이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것은 결코 반야바라밀다를 주문화하거나 주술적으로 만드는 밀교적 장치가 아닙니다. 주문(mantra)이라는 것은 인간의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시적인 암호로 표현하는 노래와 같은 것이며, 사실 리그베다와 같은 인도 고유의 경전 전체가 주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부가 암송된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브라만’이라는 신의 이름도 ‘만트라’와 어원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반야심경(般若心經)』 260자의 내용은 너무도 광대하고 강력합니다. 그것은 초언어적인 언어로 암호화되어 우리의 기억ㆍ상상력의 세포를 자극시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되지요. 바라문계열의 지식인들이 대승교단에 수행승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이러한 만트라가 성행하게 되었다고 해요. 여래의 진실한 말이라 하여 ‘진언(眞言)’이라고도 하지요. 반야바라밀다야말로 주문 중의 최상의 주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딴 것은 제가 해설할 것이 없어요. 그런데 마지막의 ‘무등등주(無等等呪)’는 좀 다양한 해석이 있을 것 같군요.
전남 광주에 가면 서석이 있는 무등산(無等山)이 있는데 ‘주변에 맞먹을 산이 없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등’은 같다는 뜻이니까, ‘무등’은 ‘같지 않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무등등주’라 하면 앞의 ‘등(等)’은 무(無)와 결합하여 맞먹을 것이 없는, ‘최상의’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뒤의 ‘등(等)’은 같은 등이지만 그 자체로 ‘뛰어나다’ ‘평등하다’ ‘모든 것에 통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무등등주’란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범어 원문에 즉해서 설명하면 ‘등’이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두 번 반복된 것입니다. 같고 같은 주문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죠. 콘체는 그냥 ‘the unequalled spell’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크게 신비롭고, 크게 밝고, 더없는, 비견할 바 없는 이 주문은, 이 주문을 외우는 사람에게 위대한 선물을 가져다 주지요. 이 ‘무등등주(無等等呪)’는 일체의 고를 제거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심경』의 첫머리가 바로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심경』은 또다시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라는 결구로 끝맺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의 경지를 나타냈지만, 마지막 구절은 모든 보살,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모든 보살들의 삶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이해하고 주문을 독송하면 곧 일체의 고가 사라진다는 것이죠. 그러기에 이 주문이야말로 ‘진실불허(眞實不虛
)’하다는 것이죠.
도가에서는 허를 긍정적인 의미로 쓰지만 불가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씁니다. 진실되어 허망되지 않다는 뜻이죠. 진ㆍ가의 이원론이 전제되어 있는 인도유러피안 사고의 일단을 볼 수 있습니다. 반야의 혁명에 몰입하게 되면 전도몽상이 사라진 진실불허한 세계가 면전에 등장하는 것이죠. 그리고 일체의 고가 사라지는 것이죠.
끝의 ‘고(故)’를 다음 단락의 시작으로 붙여 읽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나, 문맥상 ‘진실불허’는 ‘능제일체고’와 함께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수식하는 구문으로 읽는 것이 더 명료합니다. (팁: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고 싶은 사람은 유튜브에 올라있는 ‘반야심경 리믹스’를 들어보세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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