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 12.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나를 공격한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 12.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나를 공격한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16:03
728x90
반응형

12.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나를 공격한다

 

 

저장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들은 애초의 내 의도와 달리 내 등 뒤에서 배회하며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들고 있다. 타임 리프로 인해 나는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하여 내가 감독한 나만의 ‘UCC형 기억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되돌리고 싶었던 바로 그 과거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버린 나의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 삶을 응시하고 있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공격하는것만 같다.

 

 

나는 (……)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 기억은 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에게 찾아온다. 여기서 주체는 바로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이 이와 같이 갑자기 도래하는 것에 대해 는 철저하게 무력하며 수동적이게 된다. 바꿔 말하면 기억이란 때때로 나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의 신체에 습격해 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건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현재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기억의 회귀란 근원적인 폭력성을 숨기고 있는 게 된다.

-오카마리, 김병구 역, 기억 서사, 소명출판, 2004, 48~49.

 

 

치아키가 혹시나 고백을 할까 봐, 아니 이미 나의 기억속에서는 고백해버린 치아키를 피하느라, 치아키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대하는 마코토. 마코토는 타임 리프를 하게 되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동떨어져 고립된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시간적 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갑자기 마코토스러운명랑함과 천진함이 사라지자 치아키는 마코토를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들이 잠시 멀어진 틈을 타 마코토의 친구 유리는 치아키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상하다. 분명히 치아키와는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는데, 막상 치아키가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자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든다.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귀지도 못한 채 이별하는, 시작조차 없이 끝나버리는 이상한 감정.

 

정말 치아키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몇 번이나 나에게 사귀자고, 진심이라고 고백하던 그 진지한 표정은 그럼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치아키의 고백을 한사코 듣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나 자신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마코토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실감에 비틀거리고, 그렇게 비자발적으로자신의 삶에 난입하는 기억들의 난투극으로 인해 그토록 단순하던 그녀의 뇌 구조가 복잡하게 흐트러진다.

 

시간을 내 것으로만들려던 노력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 소중하게 둥지를 틀어버린 바로 그 시간을 잃어버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와버렸다.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 채 흘려버린, 아니 억지로 삭제해버린 그 시간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로 인해 시간을 도둑맞은 그 남학생의 상처받은 시간은 또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잃어버린 시간,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 존재들의 변화에 대해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기호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와 친숙했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는 뜻밖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윌에게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린 그 사람들의 얼굴은 시간의 기호들과 시간의 영향을 순수한 상태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람들의 얼굴 특성을 변질시키고 다른 특성들을 늘리거나 또 무르게 하고 부숴버린다. 시간은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 나타나기 위해 육체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육체들을 만나기만 하면 어디서든 그들을 붙잡아 그 위에 자신의 환등기를 비춘다.

-들뢰즈, 서동욱 ·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43.

 

 

 

 

인용

목차

전체

시네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