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이후부터 문단을 복고파가 휩쓸다
심노숭(沈魯崇)
國朝詞章之學, 有中葉前後之異.
明ㆍ宣以上, 不有刻劃之型範, 務立博厚之基址. 尙有大胾之味, 大帛之用.
以下, 稍稍以法度自好, 元氣日削, 眞風日萎.
此是, 曆啓諸子爲之倡, 而東人艶慕模擬, 一變而至. 時則月汀ㆍ象村兩公, 首其事也.
申東淮翊聖, 酷喜王弇洲詩文, 臥起自隨, 未嘗或捨.
其大人象村嘗曰: “此兒始生, 吾夢紅袱裹書, 自天降下, 是其善爲文耶?”
客曰: “裹中書, 必是王弇洲集.” 一時笑之. 「自著實紀」
해석
國朝詞章之學, 有中葉前後之異.
조선의 사장학은 중엽 전후로 차이가 있다.
明ㆍ宣以上, 不有刻劃之型範,
명종과 선조 이전엔 새기고 그리는 모범이 있지 않아
務立博厚之基址.
넓고 두터운 기본을 세우는 데에 힘썼다.
尙有大胾之味, 大帛之用.
그럼에도 오히려 큰 고기를 저민 맛과 굵은 비단의 쓰임이 있었다.
以下, 稍稍以法度自好,
이후로는 점점 법도를 따르는 것을 스스로 좋아해서
元氣日削, 眞風日萎.
원기는 날로 줄어들고 진풍(眞風)은 날로 말라갔다.
此是, 曆啓諸子爲之倡,
이때에 역계제자(복고파)가 창도되었고
而東人艶慕模擬, 一變而至.
조선 사람들은 모의함을 매우 좋아해서 한 번 변하여 지극해졌다.
時則月汀ㆍ象村兩公, 首其事也.
이때에 월정 윤근수와 상촌 신흠 두 사람이 그 일에 으뜸이었다.
申東淮翊聖, 酷喜王弇洲詩文,
동회 신익성은 몹시도 왕엄주의 시와 문장을 좋아해서
臥起自隨, 未嘗或捨.
누우나 일어서나 늘 가지고 다녔고 일찍이 놓질 않았다.
其大人象村嘗曰: “此兒始生,
아버지 신흠이 일찍이 말했다. “이 아이 처음 태어날 때
吾夢紅袱裹書, 自天降下,
나는 붉은 보자기가 책을 감싸고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꿈을 꿨으니,
是其善爲文耶?”
이러하기에 문장을 잘 짓는 것인가?”
客曰: “裹中書, 必是王弇洲集.”
나그네가 “싸여져 있던 책은 반드시 왕엄주의 문집이었을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一時笑之. 「自著實紀」
일시에 웃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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