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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트위스트 교육학 - 7. ①강: 일상에서 ‘ㄹ’ 빼게 하는 강의 본문

연재/배움과 삶

트위스트 교육학 - 7. ①강: 일상에서 ‘ㄹ’ 빼게 하는 강의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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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일상에서 빼게 하는 강의

 

 

그렇다면 동섭쌤 강의가 다른 강의와 방식만 다르고,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일까?

 

 

그는 이동연구소장이다. 이동하라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인식의 한계를 넘어

 

 

 

강의 내용은 김승희의 시다

 

동섭쌤 강의의 주요 내용은 일상을 이상하게 보도록 만들며, 당연함을 불편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섭쌤의 강의는 김승희의 시다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상략)

 

<일상>이란 낱말을 고요히 들여다보네

ㄹ은 언제나 꿇어앉아 있는 내 두 무릎의 형상을 닮았네

일상은 어쩌면 우리더러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자기를 섬기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네

무릎을 꿇고

상이 용사처럼 두 무릎을 꿇고

ㄹ로 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으라고

그러면 만사 다 오케이라고

 

<일상>이란 낱말을 더 들여다보네

(일상은 역사보다 더 오래되고

전쟁보다 더 많은 상이 용사들을 낳은 것)

ㄹ을 한번 움직여보네, 바퀴처럼, 썰매처럼

밀고 가보네, ㄹ을 달리게, ㄹ을 구르게, ㄹ을 구루마처럼

굴리며 굴려가 막 밀어보네.

제 속도에 취하여 ㄹ은 즐겁게 굴러가고 즐겁게 달려가네

절벽이 있는 데까지 굴러가서

 

절벽 아래엔 절이 있거나 벽이 있거나 하겠지만

ㄹ은 멈출 수가 없어 아래로 곧장 굴러 떨어지네

너무 멀리 온 거야,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어,

웃다 만 반 조각의 얼굴을 허공 중에 설핏 남기며 분해된 ㄹ은

투신 자살, 혹은 미필적 추락으로

 

(하략)

-<일상>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면, 김승희

 

 

동섭쌤 강의는 시에 나와 있듯이, ‘<일상>에서 ㄹ을 빼는 일이다. 그러면 일상이상한 것이 되어 낯설어지게 되어, 더 이상 다른 것들을 억누르지 못하게 된다. 일상이란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지, 또는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상이란 단어를 외치는 사람은 권위를 부여받고, 그에 따라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해라는 말은 늦게 일어나는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만드는 말이며, ‘우리 회사에선 이런 모습이 일상적인 모습이야라는 말은 회사의 부조리를 감추고 합리화하는 말이며, ‘군대에선 구타가 일상다반사야라는 말은 억울한 상황을 묵인하도록 만드는 말이다. 일상이란 말과 같이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단어들엔 평범’, ‘다수결’, ‘능력주의등 우리가 아무 생각도 없이 당연하게 쓰는 말들이 있다.

 

 

평범, 일상이야말로 다양함을 제거하고 똑같이 만들려는 기제다. 그걸 안다해도 벗어나기 힘들다.

 

 

우린 알게 모르게 그 단어들에 지배를 당하면서도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데, 동섭쌤의 강의는 그런 우리의 현실을 까발려 주는 것이다. 강의를 듣다보면 누누이 아주 일상적으로 쓰였던 단어들이 얼마나 정치적인 단어들인지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우리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단어들을 쓰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동섭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뭔가에 맞은 듯 현기증이 일고,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는 갑갑증까지 인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문제만 한 아름 던져주고, 그는 바람과 같이 사라지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애정을 담아 박동섭, 그를 조심이란 표현을 썼던 것이다.

이번 후기에선 동섭쌤 강의가 어떤 형식을 띠는지, 그리고 강의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었다. 다음 편엔 1강의 제목인 하품 수련의 역설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드디어 박동섭 강의의 진면목을 온 몸으로 느껴볼 차례다.

 

 

여러분 현기증 나더라도 잘 따라오세요. 어느 순간 무언가 보일 지도, 알게 될 지도 모르니.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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