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①강: 비인정한 사람이 되자
드디어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가 시작될 때 나는 강의실 뒤편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동섭쌤의 목소리가 강의실 뒤편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강의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 동섭쌤 목소리의 비결
우치다쌤은 고베여학원대학의 건물을 소개하며 “건물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목소리가 울려서 작은 목소리로 얘길 해도 전부 알아들을 수 있고 목소리에 자신 없는 사람이 말해도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리게 되어 있다.”고 평가했었다. 건물 자체가 울리도록 설계되어 강의를 하기 좋은 구조라는 얘기다. 설마 에듀니티의 강의실이 그 건물처럼 울림이 좋은 곳이어서 동섭쌤의 목소리가 울리는 건 아닐 것이다. 여긴 오피스텔을 개조하여 강의실로 꾸민 곳으로 울림까지 신경 쓰진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동섭쌤이 복식호흡을 하며 자기 몸을 하나의 울림통으로 만들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에 대해 동섭쌤은 “대구에서 강연을 할 때 해산물을 너무 많이 먹어 그 다음날 설사가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설사제를 먹어가며 6시간 강의를 했었는데, 그 때 이후로 체력이 엄청 좋아져서 지금은 몇 시간 강의를 해도 끄떡없습니다.(일동 웃음)”라고 농담처럼 말하신다. 나는 단순히 한 고비를 넘어서서 그리 되었다기보다 예전에 연극을 하며 익숙해진 발성법과 250배를 하며 몸이 다져져서 힘차게 발성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몇 마디 얘기만 들었는데도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 강의실을 아주 경쾌하게 울린다.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고, 자신감이 실려 있다.
박동섭과 이타미 주조, 그리고 디오게네스
익숙한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게 아닌,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해야 하니 한편으론 되게 떨렸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엔 떨리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고, 행동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웃음과 진지함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며 강의가 진행되었다. 동섭쌤은 우선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자기소개는 판에 박혀 있다. 출신학교, 근무하는 곳, 그리고 각종 저서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실적을 뽐내기에 분주하니 말이다.
하지만 동섭쌤은 다짜고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인 이타미 주조伊丹十三(1933~1997)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잡지사 기자가 인터뷰를 하며 썬그라스를 벗어달라고 요청하자, 이타미 선생은 “이타미쥬조라는 사람은 이럴 때 이런 선글라스를 끼고 이런 모자를 쓰는 남자로 지금까지 밥을 먹어 왔습니다. 그것을 당신이 그만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좋습니다. 그만두죠. 하지만 그 대신에 앞으로 나의 남은 일생 나와 나의 가족을 먹여 살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이타미 선생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다움을 추구할 줄 안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 지적하면 위의 대답처럼 유머러스하게 대응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 이타미 주조 선생의 스타일. 그리고 그걸 거부감 없이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자세.
이처럼 동섭쌤도 이타미 선생을 패러디하여 “몰상식과 부조리에 저항하고 대들고 그리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태도로 글을 쓰고 대학에서 강의하고(물론 그로 인해 여러 아픔들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밥을 먹어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태도로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동섭다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동섭쌤이 지향하는 것은 ‘게재불가’될지라도 자신의 언어로 논문을 쓰는 것이며, ‘그래서 현장에선 어떻게 적용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을지라도 삶과 철학, 그리고 문학을 누비는 강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으며 자신이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여전히 지금처럼 동섭다움을 지켜가겠다고 기개 있게 소개하는 것이다.
동섭쌤의 이런 결기 어린 소개를 듣고 있으니, 디오게네스Diogenes의 일갈이 떠올랐다. 드럼통에 살던 거리의 철학자, 삶의 철학자인 그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이가 부러워하는 권력, 돈, 사람들의 환호까지 모든 걸 다 가진 사내인 알렉산더 대왕과 더러운 드럼통을 집 삼아 살며 제 한 몸 추스르기에 버거워 보이는 사내인 디오게네스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흡사 송혜교와 송중기가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는 것 이상의 핫이슈였다. 그 때 알렉산더 대왕은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세상의 모든 걸 가진 사내가, 아무 것도 없는 사내에게 아량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량 나에게 베풀어줄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간도 쓸게도 다 빼줄 각오가 되어 있는데, 슬프게도 내 곁엔 알렉산더 같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요즘으로 치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박사처럼, 사회적 금기를 가볍게 여기며 “대한민국 학교 모두 엿 먹으라 그래!”라고 외치는 권상우처럼 의연하고도 당당하게 “거참! 햇빛 가리잖소. 쫌만 비켜주쇼~”라고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것에 분개하며 일갈했다. 바로 이런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디오게네스와 박동섭, 그 둘은 묘한 동일감이 있다.
비인정한 사람이 되어 누비라
이런 이야기는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몰인정不人情과 비인정非人情이 있다고 한다. 몰인정한 사람은 남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렇기에 어떻게 행동하길 원하는지 알기에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비인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애초에 관심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행동의 결정적인 요소로 삼지 않으며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몰인정한 사람은 친구가 곤란한 일을 겪어 돈을 빌리러 왔을 때 그걸 빌려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비인정한 사람은 빌려준다고 말하나 결국 그걸 잊어버려 빌려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치다쌤도 동섭쌤에게 이와 비슷한 행동을 했었다고 한다. 우치다쌤이 한국에 강의를 하러 왔을 때 서점에 같이 갈 기회가 있었고 그곳에서 우치다쌤의 책을 사려 하자, 우치다쌤은 “책을 보내줄 테니, 사지 말아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엄청난 미담이지만, 그 후로 우치다쌤은 한 번도 책을 보내준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말에 강의실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말한 후에 이런 식으로 잊어버린 경험이 있을 테니, 남일 같이 않아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몰인정한 사람이든 비인정한 사람이든, 결과적으론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으며 때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몰인정한 사람이야’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근본적인 생각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몰인정한 사람의 판단기준은 다른 사람인데 반해, 비인정한 사람의 판단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또한 몰인정한 사람은 ‘X를 바라기에 X를 하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행동의 동기가 되지만, 비인정한 사람은 ‘X를 하고 싶기에 X를 하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행동의 동기가 된다.
비인정한 사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如獅子聲不驚, 如風不繫於網, 如蓮花不染塵, 如犀角獨步行).”는 『숫파니파타』 경구의 사자, 바람, 연꽃 같은 이미지다. 세상의 가치나 타인의 신념이 아닌 자신의 신념으로 오롯이 자신의 말을 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동섭쌤이 흔히 쓰는 ‘개체식별가능한’이라는 말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동섭쌤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혼자서 뭔가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은 비인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비인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우치다쌤과 동섭쌤의 공통점, 비인정한 사람이라는 점.
‘하품 수련의 역설’은 언제 나오나요?
역시 동섭쌤의 강의는 종횡무진 누비고 비틀며, 틈과 틈 사이를 휘저으며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1시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오늘의 강의 주제인 ‘하품 수련의 역설’에 관해선 ‘하’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설마 동섭쌤이 오늘의 강의 주제를 착각하신 거 아냐?’라는 걱정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그때쯤 동섭쌤도 “아직까지 하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얘기는 자연스럽게 말하는 중에 차차 나오게 됩니다”라고 선빵을 날리셨다.
다음 후기에선 동섭쌤의 말처럼 정말 ‘하품 수련의 역설’이 등장하고, ‘자립’과 ‘무지’란 단어의 일반적인 정의가 아닌 완벽하게 다른 정의도 등장하며 ‘『유아교육학개론』도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런 얘기들을 되새길 수 있다면, 우린 배움에 대해, 그리고 교육에 대해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다음 후기까지 안녕하시길~
▲ 하품의 하자는 다음 후기에 나온다. 안 나온다고 채널 돌리면 아니 아니 아니 되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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