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 6. 마왕퇴 『노자(老子)』의 발견과 중국을 휩쓴 불교
마왕퇴 『노자』 발굴이 보여준 고문헌의 정밀성
동서문명이 경전화(canonization) 사업을 벌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중국문명이 서양보다 훨씬 빠르고 방대하며 더 정확합니다. 얼마 전에 마왕퇴(馬王堆)의 한묘(漢墓)에서 B.C. 190년경의 백서(帛書)들이 발견되었는데, 문헌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 연구학자가 쥬라기 공원에 가서 살아있는 공룡을 보았을 때 감격하는 장면과 비견할 수 있는 사건으로서, 눈물을 줄줄줄 흘릴 만한 엄청난 사건이 터진 것이죠.
노자 텍스트만 보더라도 B.C. 5세기 정도부터 계속 베껴서 내려 온 것이니 그 원본은 고사하고 그 당시 널리 읽혔던 책과 요즘 우리가 보는 책과는 얼마나 차이가 크겠습니까? 게다가 죽간을 묶는 가죽끈이 끊어져서 다시 묶을 때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 즉 착간(錯簡) 현상을 감안할 때 문헌 비평(text critique)은 보통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한 가지 알아둘 것이 있는데 죽간으로 된 책은 편(篇)으로 세고 두루마리로 된 것은 권(卷)으로 센다는 것이예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을 많은 사람들이 공자가 『주역(周易)』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요즘의 가죽표지의 콘사이스가 세 번 떨어진 것처럼 너덜너덜 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죽간을 묶은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공부한 것뿐이예요. 이 끈은 잘 끊어집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공자는 사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한 건 아닌 거야. 한 100번쯤은 떨어져야 제대로 공부했단 이야길 듣는 거지.
그런데 마왕퇴의 『노자』는 죽간으로 된 것이 아니고 비단에 쓴 백서입니다. 백서는 병풍처럼 접어서 보관되어 있으므로 착간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자 텍스트와 B.C. 190년의 텍스트가 80프로이상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중국문명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결국 중국의 고문헌은 상당히 일찍 경전화되면서 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위편삼절이 대단한 게 아니다. 죽간으로 묶인 책이기에 조금만 봐도 금방 떨어지니 말이다.
당(唐)의 『구경(九經)』, 송(宋)의 『십삼경(十三經)』 확정
시(詩)·서(書)·예(禮)·악(樂)·역(易)·춘추(春秋)에서 예(禮)는 『예기(禮記)』ㆍ『의례(儀禮)』ㆍ『주례(周禮)』의 삼례로 분화되고 춘추(春秋)는 『좌씨전(左氏傳)』ㆍ『공양전(公羊傳)』ㆍ『곡량전(穀梁傳)』의 삼전(三傳)으로 분화되어 모두 구경(九經)이 되는데 위진 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 구경(九經)이란 말이 나와요.
한나라 이후 가장 번성했던 제국은 당나라인데 이 당대(唐代)에 중국문명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구경(九經)에 『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효경(孝經)』 그리고 중국고대의 사전인 『이아(爾雅)』가 더해져서 십삼경(十三經)이 된 것입니다. 이 십삼경(十三經)에 『대학(大學)』ㆍ『중용(中庸)』ㆍ『논어(論語)』·『맹자(孟子)』는 다 들어가 있지만 사서(四書)란 개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송대(宋代)에 이런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수당을 휩쓴 불교와 『사서』란 개념의 성립
당(唐)과 송(宋)의 거대한 차이는 당(唐)이 외래에서 유입된 불교문명이었음에 반해 송(宋)은 그 외래문명에 대한 반발로 철저히 반불교적인 유교문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불교는 전도주의(evangelism)가 매우 강한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인도라는 울타리를 넘어 중국으로까지 전파되는 것이죠.
나는 언젠가는 학생들하고 인도에서부터 천산북로, 남로를 거쳐 돈황까지, 그리고 돈황에서 방향을 틀어 곤륜산까지 올라갔다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불교의 전도자(evangelist)들이 어떻게 중국문명에 침투했는가를 걸으면서 체험해보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인류사에 있어서 불교처럼 강력하게(massively) 외래문명이 한 문명에 들어온 사건이 별로 없습니다. 인류사에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엄청난 문화적 공략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중국문명은 불교에 완전히 세뇌(洗腦)당하게 되요. 그래서 불교에서 에너지를 빌린 수(隋)ㆍ당(唐)의 제국문명이 꽃핀 것입니다. 엄청난 산맥으로 격절되어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인도문명과 중국문명이 융합되는 거대한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징기스칸이 세계를 제패했다고는 하나 말발굽으로 한번 달렸을 뿐, 문화를 남긴 것이 없었으므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엄청난 사건이었죠. 현대에서 이러한 형태의 융합이 가장 매시브하게 일어난 것이 바로 서구라파의 계몽주의(enlightenment)로부터 나온 거대한 과학문명이 세계를 제패한 사건입니다. 위와 같이 수(隋)ㆍ당(唐) 문명에서 송(宋)나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서(四書)’라는 새로운 개념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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