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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중용장구서 - 5.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것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중용장구서 - 5.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것

건방진방랑자 2021. 9. 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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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장구서 5.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것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
그런데 인심과 도심의 다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이 때로는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 성명(性命)의 바름에서 비롯되기도 하여 인간이 지각(知覺)하는 바가 서로 각기 다를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형기(形氣)는 구체적 형체의 세계를 말하고 형기지사(形氣之私)이기적인 욕망(selfish desire)’을 말합니다. 성명지정(性命之正)은 역시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란 말에서 나왔겠죠? ,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의 올바름을 뜻해요. 이기론(理氣論)적으로 말하면 형기(形氣)는 기의 세계고 성명(性命)은 리의 세계이겠죠? 지각자부동(知覺者不同)은 후천적·환경적 요소에 따라 인식적 차이·지각의 차별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 사람마다 앎과 깨달음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뜻인데, 어떤 사람은 많이 깨닫고, 어떤 사람은 적게 깨닫고, 어떤 사람은 욕심이 많고, 어떤 사람은 욕심이 적고 하는 등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지각(知覺)한 바가 서로 같지 않다는 말의 내용입니다.

 

 

 

是以或危殆而不安, 或微妙而難見耳.
이 때문에 혹은 위태하여 편안하지 않고 혹은 미미하고 아득하여 드러나지 않게 된다.

 

이 구절은 앞에 나온 인심유의(人心惟危)ㆍ도심유미(道心惟微)를 한 번 더 반복한 구절(phrase)입니다.

 

 

然人莫不有是形, 故雖上智不能無人心; 亦莫不有是性, 故雖下愚不能無道心.
그러나 사람이 이 형체가 없을 수 없으므로 제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인심(人心)이 없을 수 없고, 또한 이 본성이 없을 수 없으므로 제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도심(道心)이 없을 수 없다.

 

()은 몸이라는 형체를 가집니다. 성인이라 하더라도 몸뚱이가 없을 수는 없는 거죠. 사실 심()이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 기분 좋은 겁니다. 인간의 심()은 마음대로 상상하잖아요? 뭐 못하는 게 없어요. 여러분들이 애인을 그리워할 때, 마음으로야 무슨 짓인들 못합니까? 인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것은 우주 끝까지라도 가볼 수 있는 완벽한 자유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심()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몸이라는 구체적 형체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항상 하는 얘기지만 오늘부터 담배 끊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은 마음대로입니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 “서원에 지각하지 않겠다”, “결석하지 않겠다마음대로지요. 그러나 그것은 심()의 결정일 뿐, 실제로 담배가 안 끊어지는 게 상례입니다. 그것이 바로 심()이 안고 있는 파라독스(Paradox)예요. 담배를 피우지 않고 몇 시간만 지나면 그만 얼굴이 파래지고 꽁초라도 찾아보려고 쓰레기통을 막 뒤지지요. 이것이 인간 존재의 파라독스요 잘 처분되지 않는 자기기만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구체적인 형체의 관성체계로서 심()은 여기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지요. 인간의 몸이란 마음대로 스톱이 안 되는 관성체계(inertia)입니다. 이 몸의 관성체계를 조선 성리학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서는 칠정(七情)이라고 규정했는데 여기서는 인심(人心)이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도심(道心)은 인의예지(仁義禮智) , 사단(四端)을 말하는 거예요. 이 도심(道心) ,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내 몸을 지배하고, 그리고 인간사회를 지배한다면(prevail)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심()은 어디까지나 형기(形氣)라는 구체적 형체의 구속으로부터 결국은 이탈될 수 없습니다.

 

호랑이 같은 동물도 상당히 대단한 신경계를 발달시켰는데 나는 그들의 심()의 상상력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호랑이가 정글을 넘어서 우주의 끝을 상상할런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호랑이를 상당히 존경하는 사람이예요. 인간이라 하여 동물들을 우습게 보는 건 매우 우매한 짓입니다. 그들이 인간보다 우월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하지만 심()의 상상력의 범위를 놓고 말하자면, 호랑이가 인간만큼 거대할지 그것은 잘 모르겠단 말입니다. 개나 호랑이도 꿈을 꾼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밝혀져 있으므로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동물들의 심은 그렇게 막 무한정하게 가버리는 게 아니라 적정한(modest) 범위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호랑이 같은 동물의 심()의 상상력은 형기(形氣)의 구조 안에 적정하게 머물러 있는 데 반해 인간만은 유독 형기를 무시하는 무한한 심()의 상상력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유애(有涯)의 형기(形氣)로 무애(無涯)의 심()을 따라가려는 인간이여, 슬프도다[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以有涯隨無涯殆也].”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 경우에 부합하는 표현일 겁니다. 내 경우도 그래요. 나는 평생 눈이 좋았는데 이제는 노안(老眼)이 되어 눈이 잘 안 보여요. 내 심()눈이 잘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눈의 망막이라는 구체적인 형기(形氣)가 이미 망가져 버린 게 나의 존재거든요. 그런 한계를 가진 존재가 인간이란 말입니다. 그런데도 난 바보같이 한의학공부를 한다고 학생노릇을 하고 있어요. 쯧쯧쯧.

 

상지(上智)ㆍ하우(下愚)란 말은 논어(論語)』 「양화(陽貨)편에 나옵니다子曰: “唯上智與下愚, 不移. 인간을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로 분류하고는 상지(上智)라 해서 도심(道心)만 있는 게 아니고 하우(下愚)라 해서 인심(人心)만 있을 수 없다고 하는데 형()과 성()의 문제에서도 같은 얘기가 가능합니다. 인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구유하고 있습니다. 인심(人心)ㆍ도심(道心)은 인간존재의 필연적 양면이지요. 유가(儒家)는 인심(人心)ㆍ도심(道心)이 모든 인간에 구유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간 평등론을 인정한 셈이고 이 두 가지의 치우침에 대한 문제로 상지(上智)ㆍ하우(下愚)를 말함으로써 차별론을 제기했지만 다시 이 차별론의 전제 위에서 도심(道心)ㆍ인심(人心)의 밸런스를 이루려고 하는 교육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변화기질(變化氣質)이라는 근세유학의 최대 과제였지요.

 

그런데 이제마는 기질(氣質)에 대해 체질(體質)로 기울었지요. 체질(體質)이란 말 자체는 이제마가 쓴 것이 아닙니다. 체질이란 말은 후대에 지어진 말이고 이제마는 태소음양(太少陰陽)을 말했을 뿐입니다. 어쨌든 이제마의 이론은 장기의 품부(稟賦)에 선천적 차별이 있다고 하여, 형기(形氣) 그 자체에 4가지 유형을 설정한 것이 특징입니다. ()은 동일하다. 그런데 형기(形氣)는 사람마다 다른 4가지 유형이 있고 그것은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제마가 인간을 이해하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마에 있어서 복성(復性)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자기의 형기(形氣) 장기구조의 유형에 따라 어느 정도 전적인 차이가 생기겠지요. 이런 점에서 이제마의 사상은 근세 유학과 상당히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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