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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12장 - 3. 가족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2장 - 3. 가족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

건방진방랑자 2021. 9. 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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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가족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

 

 

서양사회학 : ()을 가()에서 해방시켜라!

 

중국말에 쓰이는 국가라는 말은 가()와 국()을 하나의 동일한, 동질적 공간체계로 보는 겁니다. (). ()라는 개념, 이게 동양의 특이한 사고 방식이예요. 근대 사상에 의해 굉장히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금 사회학의 기본 가설이 뭔지 알아요? ‘()과 가()의 컨티뉴티(Continuity, 연속성)를 끊어라는 겁니다. , ‘()의 윤리를 가()의 윤리로부터 해방시키라는 것이죠.

 

이것이 사실은 근세 사회과학의 출발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이라던가, 서구라파 근대화 사상은 사회 현상이란 사회 현상 나름대로의 독특한 밸류(Value, 가치)가 있는 것이지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윤리나 도덕성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조선왕조를 돌아봤을 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든가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어엿비 여기시어 한글을 창제했다는 말을 듣거나, 요즘 시대에 김영삼 대통령이 우리를 아들 딸 같이 여기사 . 운운하면, 여러분들 사고구조에 반발감이 든단 말입니다.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현대적인 사유구조의 측면에서 보면, 가정윤리(family ethic)와 사회가치(social value)를 일치시키는 것을 거부하도록 교화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고, 또 가정윤리와 사회가치를 분리시키는 데서 근세 학문이 출발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가(儒家)는 어디까지나 그 훼밀리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속할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합니다. 이 유가의 고집은 대단해서, 이런 측면을 서구의 사회과학(social science)은 감당해 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의 차원의 문제가 아닌데, 교육만 해도 국()을 가()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서부터 근세 교육개념이 생겨난 것입니다. , 교육을 가()로부터 분리시켜 국가가 독점한 거예요. 이게 소위 의무교육이고, 공교육이고, 근대교육의 출발이란 말입니다. ‘국가는 그 국민을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국가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은 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이유는 뭡니까? 의무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교묘히 숨어 있는 원래 의도가 도대체 뭐예요? 왜 미쳤다고 나라가 교육을 시키냐고? 근대교육사상의 실상은,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규격화되고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집체교육이 필요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근세로 오면서 국()이라는 게 거대한 자본주의회사가 되어버렸거든요. 알겠어요? 18세기 초부터 시작되어서 19,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자본주의 공장제가 성행되어 매뉴팩처(Manufacture)가 되자, 국가로서는 균일한 교육이라는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여기에서 대중교육(massive education)의 개념이 생겨난 거예요.

 

 

 

유교의 국가주의와 반국가주의

 

공자의 사상은 대중교육(mass education) 개념이 없던 시대의 사상이니까 비교하는 것이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훼밀리가 인간의 교육을 포기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가정교육이라는 말이 있지만, 도대체 사람들 서로가 얼마만큼 거기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교육의 행태를 봅시다. 자식을 낳고서 그 자식이 스물 너댓. 일고여덟이 되면, 결혼해서 또 자식을 낳아요. 그리곤 어떻게 키우는 지도 모르면서 엉겁결에 56년 키우다가 자녀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이젠 도시락만 싸는 걸로 때우죠. 그러면서 대학에 들여보내 두면 무슨 지랄을 하든 졸업을 해! 그러니까 처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교육을 받는지 몰라요! 부모가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 자녀를 국가에 위탁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완전히 넌센스죠. 이만 저만한 넌센스가 아닙니다! 유교적으로 보면 이것만큼 웃기는 일도 없어요. 공자시대도 훼밀리보다 더 큰 단위의 조직이 있었다고. 다 있었지만, 공자는 끝까지 훼밀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아주 특이한 사상이죠.

 

맑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거기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도 프롤레타리아를 지배할 윤리가 그들 내부에서는 안 나온다는 점입니다. 해방된 프롤레타리아 에토스(Ethos, 풍조)가 유지되려면,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지배할 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맑스는 오직 사회 혁명에만 관심을 두었지 윤리니 에토스니 이런 것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것에 관한 맑스의 저서가 있습니까? 전혀 없어요. 자본론만 쓸 게 아니라 윤리론도 썼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러시아가 저렇게 실패는 안 했을 거예요. 맑스가 프롤레타리아 윤리라는 중대한 문제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또 그런 윤리론이 부재한 탓에 구소련이라는 거대국가가 해체되어버렸다는 것을 보면, 역시 공자가 훨씬 더 현명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 사회의 가장 원초적이고 지속적이며 가장 믿을만한 조직체계는 훼밀리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이게 유가의 기본적인 대전제라는 점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 지금 대통령 믿고 살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실감을 못하겠지만, 그 국가 사회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도 있는 거라고. 만주족이나 여진족들 나라가 있다가 없어졌죠? 이렇게 국가라는 것은 제 아무리 굳건하게 있다가도 또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겁니다. 실체가 아니에요. 뭘 믿고 사느냐, 왜 사느냐를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유교주의의 패러독스가 있는 겁니다. 믿을 수 있는 건 궁극적으로 훼밀리밖에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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