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11장 - 2. 사서는 서로 통한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1장 - 2. 사서는 서로 통한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17. 12:55
728x90
반응형

112. 사서는 서로 통한다

 

 

不爲索隱行怪, 則依乎中庸而已. 不能半塗而廢, 是以遯世不見知而不悔也. 此中庸之成德, 知之盡仁之至不賴勇而裕如者, 正吾夫子之事, 而猶不自居也. 故曰唯聖者能之而已. 右第十一章. 子思所引夫子之言, 以明首章之義者止此. 蓋此篇大旨, 以知勇三達德爲入道之門. 故於篇首, 卽以大舜顔淵子路之事明之. , 知也; 顔淵, 仁也; 子路, 勇也. 三者廢其一則無以造道而成德矣. 餘見第二十章.
이상은 11장이다. 자사가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1장의 뜻을 펼쳐 여기에서 끝냈다. 이 책의 큰 뜻은 지ㆍ인ㆍ용 세 가지 달덕(達德)으로 도()에 들어가는 문을 삼았다. 그러므로 책머리에 요()임금ㆍ안연ㆍ자로의 일을 예로 들어서 그 내용을 밝히셨으니, ()은 지()이고 안연은 인()이고 자로는 용()이니, 셋 중에서 하나라도 폐하면 도()에 이르러 덕()을 이루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지난 시간에 공부한 제 11장은, “자사소인부자지언이명수장지의자 지차(子思所引夫子之言以明首章之義者 止此)”라고 했습니다. , 주자는 2장부터 11장까지를 자사가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1장에 대한 주를 단 것이라고 파악한 것이죠.

 

蓋此篇大旨以知仁勇三達德 爲入道之門 故於篇首 卽以大舜顔淵子路之事 明之 舜 知也 顔淵 仁也 子路 勇也”(앞에 9장과 뒤에 20에 나오는 의 예를 이미 공부했다) ()은 지()에 속하고, 안연은 인()에 속하고, 자로는 용()에 속하니, “三者 廢其一則無以造道而成德矣” ‘()’라는 말은 만든다는 뜻이 아니고, 이른다, 다다르다는 뜻입니다. Reach에 해당되죠. 그러니까 도()에 이르러 덕()을 이루는 것을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견제이십장(餘見第二十章)” 지난번에 이야기했지만, 20장이 지··용을 펼친 것이죠. 그래서 20장과 통한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11장 말미에 나오는, “군자 의호중용 둔세불견지이불회 유성자 능지(君子 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 能之)”라는 구절을 다시 한 번 상기 해 두세요. 이것이 무엇과 통하는지 아십니까? 논어(論語)의 제일 첫 마디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인데, 세 번째 구절인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이것하고 여기 11장의 구절과는 통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서의 모든 사상들이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중용(中庸)에서 명백히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중용(中庸)텍스트 크리틱(Text critic)에 대해 말했지만, 앞으로 사서 사이의 텍스트 크리틱은 좀 더 깊게 연구되어져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경학(經學)이라는 것은 거의 무방비상태입니다. 중국·일본도 마찬가지 예요. 중국은 20세기 석학들이 조금 건드렸을 뿐이고, 일본은 조금 좋은 학자들이 있었고. 그렇지만 한국에는 학자다운 학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정인보 선생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선 20세기의 유일한 한학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경학으로 세계적인 경지에까지는 못 갔어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사서를 무궁무진하게 탐구하십시오. 그러면 논문을 쓰더라도 새롭게 쓸 소재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용

목차

전문

본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