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2. 사서는 서로 통한다
不爲索隱行怪, 則依乎中庸而已. 不能半塗而廢, 是以遯世不見知而不悔也. 此中庸之成德, 知之盡ㆍ仁之至ㆍ不賴勇而裕如者, 正吾夫子之事, 而猶不自居也. 故曰“唯聖者能之”而已. 右第十一章. 子思所引夫子之言, 以明首章之義者止此. 蓋此篇大旨, 以知ㆍ仁ㆍ勇三達德爲入道之門. 故於篇首, 卽以大舜ㆍ顔淵ㆍ子路之事明之. 舜, 知也; 顔淵, 仁也; 子路, 勇也. 三者廢其一則無以造道而成德矣. 餘見第二十章. 이상은 11장이다. 자사가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1장의 뜻을 펼쳐 여기에서 끝냈다. 이 책의 큰 뜻은 지ㆍ인ㆍ용 세 가지 달덕(達德)으로 도(道)에 들어가는 문을 삼았다. 그러므로 책머리에 요(舜)임금ㆍ안연ㆍ자로의 일을 예로 들어서 그 내용을 밝히셨으니, 순(舜)은 지(知)이고 안연은 인(仁)이고 자로는 용(勇)이니, 셋 중에서 하나라도 폐하면 도(道)에 이르러 덕(德)을 이루는 일을 할 수가 없다. |
지난 시간에 공부한 제 11장은, “자사소인부자지언이명수장지의자 지차(子思所引夫子之言以明首章之義者 止此)”라고 했습니다. 즉, 주자는 2장부터 11장까지를 자사가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1장에 대한 주를 단 것이라고 파악한 것이죠.
“蓋此篇大旨以知仁勇三達德 爲入道之門 故於篇首 卽以大舜顔淵子路之事 明之 舜 知也 顔淵 仁也 子路 勇也”(앞에 9장과 뒤에 20장에 나오는 知ㆍ仁ㆍ勇의 예를 이미 공부했다) 순(舜)은 지(知)에 속하고, 안연은 인(仁)에 속하고, 자로는 용(勇)에 속하니, “三者 廢其一則無以造道而成德矣” ‘조(造)’라는 말은 만든다는 뜻이 아니고, 이른다, 다다르다는 뜻입니다. Reach에 해당되죠. 그러니까 도(道)에 이르러 덕(德)을 이루는 것을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견제이십장(餘見第二十章)” 지난번에 이야기했지만, 20장이 지·인·용을 펼친 것이죠. 그래서 20장과 통한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11장 말미에 나오는, “군자 의호중용 둔세불견지이불회 유성자 능지(君子 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 能之)”라는 구절을 다시 한 번 상기 해 두세요. 이것이 무엇과 통하는지 아십니까? 『논어(論語)』의 제일 첫 마디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인데, 세 번째 구절인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이것하고 여기 11장의 구절과는 통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서의 모든 사상들이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중용(中庸)』에서 명백히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중용(中庸)』의 텍스트 크리틱(Text critic)에 대해 말했지만, 앞으로 사서 사이의 텍스트 크리틱은 좀 더 깊게 연구되어져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경학(經學)이라는 것은 거의 무방비상태입니다. 중국·일본도 마찬가지 예요. 중국은 20세기 석학들이 조금 건드렸을 뿐이고, 일본은 조금 좋은 학자들이 있었고. 그렇지만 한국에는 학자다운 학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정인보 선생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선 20세기의 유일한 한학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경학으로 세계적인 경지에까지는 못 갔어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사서를 무궁무진하게 탐구하십시오. 그러면 논문을 쓰더라도 새롭게 쓸 소재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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