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심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 논리를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쉽게 기본으로 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특수한 경우를 검토해서 보편을 검증하려고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이 소양인과 태음인에게서 각각 두드러진다.
소양인과 태음인이 관심을 두는 것은 원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의 문제이다. 사회생활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소양인은 집단이 공통적으로 처한 상황에 관심을 두고, 태음인은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둔다. 소양과 태음은 다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음(陰)이다. 그 바닥의 음은 구체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리가 아니라 상황 쪽으로 관심이 간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음/양으로 다르기에 방향이 달라진다.
앞서도 말했듯이 태음인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즉 상황을 고정변수로 놓고 그 속에서 최선을 찾는다. 반면 소양인은 상황을 변경 가능한 변수로 본다. 따라서 각각의 개인이 처한 상황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며, 그 집단 구성원의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처한 상황쯤이 되어야 상황에 맞춘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음인(陰人)의 기본이 되는 희락(喜樂)은 긍정적인 면을 넓히고자 하는 접근방법이고, 양인(陽人)의 기본이 되는 애노(哀怒)는 부정적인 면을 줄이고자 하는 접근방법이라고 했다. 그 차이가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소양인에게 어설프게 상황논리를 펴면 대뜸 “핑계 대지마”라고 나온다. ‘왜 네가 처했다는 특수한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는 것이다. 소양인이 핑계 대지 말라는 것은, 그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에 맞췄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태음인으로서는 그 특수한 상황을 왜 바꿔야 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때로는 알아도 바꿀 엄두를 못 내는 경우도 있다. 일단 상황을 인정하고 나서 방법을 찾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태음인은 상대의 상황이 확실히 파악되기 전에는 ‘핑계’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거꾸로 소양인 쪽이 핑계 댄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김건모의 <핑계〉라는 노래가 있다.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라는 가사 바로 뒤에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라는 가사가 이어진다. 이건 내 특수성을 네가 고려해봤느냐고 묻는 것이다. 보편성을 핑계로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보편성 무시, 특수성 무시가 상대에게는 서로 핑계로 보이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내게 핑계라고 보이는 것이 상대에게는 핑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상대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택한 것이다. 상대의 말을 핑계로 몰아붙이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고백에 불과하다【물론 상대가 상습적 거짓말쟁이라면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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