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심(誇心)이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모습
‘별 생각 없이 그냥 일반화되어 있다고 여겨버린 근거’라는 말이 어려운가? 실제 나타나는 모습은 간단하다. 정도 이상으로 숫자를 들이대는 일, 권위자의 말이라고 우기는 일,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주장이라고 머릿수로 밀어붙이려 하는 일 등등, 이런 것이 다 과심(誇心)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예를 들면, 남대문시장에서 선물을 사가지고 미도파 포장 센터에서 미도파 포장지로 포장해서 선물하는 것. 비교적 경증에 속하는 경우이기는 하지만, 이런 정도도 엄밀히 따지면 다 과심(誇心)이다. ‘미도파는 남대문보다 좋다’ ‘비싼 선물은 싼 선물보다 성의가 들어간 것이다’라는 식의 일반론을 지나치게 따르는 것이 과심(誇心)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숫자 선호의 형태로 나타나는 과심(誇心)의 경우를 보자. 예전에 이런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아기에게 가장 적합한 분유의 온도는 32.4도’ 숫자는 기억이 안 나서 대충 쓴 것이지만, 하여튼 그런 내용의 광고였다. 선전하고자 하는 상품은 전자레인지.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정확한 온도를 맞춰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었다.
소양인은 세회(世會)를 보며 사무(事務)에 능하다고 했다.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 중에서는 소양인이 비교적 사회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가치실현이나 경제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집안에만 앉아 있는 자체를 못 견뎌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소양인 엄마가 직업을 가지게 되어 육아에 쏟는 시간이 모자라게 되면, 이를 다른 방법으로라도 어떻게든 보상해주려 한다. 그런 상황 역시 과심(誇心)이 발동하기 쉬운 상황이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데 중요한 것은 지나친 관심이 아니다. 바른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같이 있을 때 늘 애정(愛情)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 컸을 때의 정답이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엄마와 아이가 스킨십을 느끼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엄마도 그걸 느끼니까 늘 조금은 불안해하고, 육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신 없어 한다. 모든 사심(邪心)은 자기 긍정감이 부족할 때 발동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과심(誇心) 역시 마찬가지다.
위의 광고는 그 과심(誇心)을 자극한다. 소수점 아래까지 온도를 맞춰주면 좋은 전자레인지이고, 이왕이면 우리 아이를 위한 것은 좋은 전자레인지를 쓰라는 것이다. 소음 기운의 발동은 각각의 영역에 따라 적절한 기준을 설정하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가정용 전자레인지에서 소수점 아랫자리란 과도한 기준이다.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인 것이다. 그래도 정확한 온도를 맞춰주는 것이 더 좋다는 건, 숫자에 대한 맹신을 자극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이가 잘 받아먹는 온도가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분유의 온도다. 그건 일단 아이에 따라 다 다르다. 같은 아이라도 몸 상태 따라, 즉 열이 있을 때, 속이 찰 때, 기운이 넘칠 때, 기운이 없을 때 등에 따라 잘 받아먹는 온도가 다 다르다. 아이가 먹는 정도를 보고, 아이의 노는 상태나 변의 상태를 보고 적당히 온도를 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정답이지, 32.4도는 무슨 얼어죽을 32.4도인가? 그런 광고는 논리적인 소음인에게는 먹히지 않다. 소양인이라도 자신감 있는 소양인에게는 안 먹힌다. 아이마다 다 다른 법이라고 생각하는 태음인에게는 물론 안 먹힌다. 단지 과심(誇心)이 뜬 소양인을 노리는 광고인데, 별로 성공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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