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치심(侈心)과 위의 태음인의 소양 기운
어깨에 힘주기
다음은 태음인이 소양 기운을 얻는 이야기다. 역시 태행(怠行)으로 가는 길과 독행(獨行)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이중 태행(怠行)으로 가는 길을 동무(東武)는 치심(侈心)이라고 했다. 사치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고 가자면, 쓸데없이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치심(侈心)이다. 남에게 무언가 드러내 보이려는 마음이다.
소양인의 당당함은 대중의 정서에 대한 빠른 파악에서 나온다. 그런 말이 있다. 똥개도 자기 바닥에 가면 50점은 접어준다고, 자기 바닥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니다. 돌아가는 켯속을 잘 알고 있는 곳이 자기 바닥이다. 소양인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에 대한 파악이 빠르다. 자존심이상해서 억지를 필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의견을 주장하게 된다. 즉 돌아가는 흐름을 빨리 읽는 소양인은 대부분의 공간을 쉽게 자기 바닥처럼 활용할 수 있기에 당당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인(陰人)들이 이를 잘 모르고 겉에 보이는 당당함만을 흉내 내면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된다. 남들에게 공감받기 어려운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소음인의 긍심(矜心)이다. 남에게 공감받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것이 태음인의 치심(侈心)이다. 소양인의 마음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긍심(矜心)이 우기기로 나타난다면, 겉으로 나타난 행동만을 흉내 내는 치심(侈心)은 쓸데없는 힘주기로 나타난다. 즉 필요 이상으로 당당한 척하는 것이 사치의 정체라는 것이다.
치심(侈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치심(侈心)이다. 아이들이 괜히 우쭐하고 싶은 마음에 사고 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치기(稚氣) 어린 행동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항상 서로 우쭐대려는 마음이 있다. 여럿이 모이면, “너 이거 할 수 있어?” “넌 이거 할 수 있어?”라며 말이 오간다. 평소에는 말도 적고 겁도 많은 친구가 불쑥 “난 할 수 있어”하면서 무모한 짓을 한다. 예를 들면 광화문 앞 16차선 도로 무단횡단하기, 3m쯤 되는 벼랑에서 뛰어내리기 따위의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보여주는 아이들 가운데 의외로 태음인이 가장 많다. 치심(稚心)이란 억눌렸다가 폭발하는 치심(侈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통제받기 때문에, 좋은 기운이든 나쁜 기운이든 어느 정도는 억눌렸다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요즘은 좀 덜해졌지만 2,30년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도, 학생들의 통제 방식이 모두 군국주의적 사고를 기준으로 했다. 게다가 모든 역사가 영웅 사관위주로 만들어져 어릴 때부터 영웅전을 읽으며 자라고, 남자 역할, 여자 역할에 대한 주입식 세뇌도 상당했다. 전체적으로도 문제지만, 특히 남자아이들이 건전한 사고를 가지기에는 아주 불리한 환경이었다.
나쁜 기운이나 나쁜 행동, 즉 사심(邪心)이나 태행(怠行)은 지적되고 고쳐져야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본인이 극복할 일이지 옆에서 강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면서 고쳐나가야지, 억누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는 영웅사관을 주입시키면서 한쪽으로는 군국주의적 통제를 하면, 치심(侈心)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숨어든다. 그러다가 그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치기의 형태로 드러난다. 예전에는 대학 신입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이 아주 심했다. 사발로 고량주 마시기, 남대문에 올라가기, 무교동 네거리에서 방뇨하기 등등, 다 치심(侈心)에서 나온 치기 어린 짓이다.
어른들의 치심(侈心)은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는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 퇴역 군인 중에 어디 나갈 때마다 주렁주렁 훈장 달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표범무늬 에어로빅 옷을 평소 나들이 때 입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것들이 다 치심(侈心)이다. 꼭 눈에 보이게 돈을 쓰는 것만이 치심(侈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