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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2부 뿌리① - 4장 사상의 시대, 민주주의가 가능한 이유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2부 뿌리① - 4장 사상의 시대, 민주주의가 가능한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2. 1. 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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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사상의 시대

 

 

민주주의가 가능한 이유

 

 

서양의 역사가들은 그리스를 서양 문명의 요람으로 간주한다. 그 이전의 크레타와 더 이전의 오리엔트에서 발달한 문명이 그리스 문명의 선구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리스 시대에 와서야 서양 문명의 골격이 갖추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스가 오늘날 유럽에 속하기 때문일까? 천박한 유럽 중심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을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더 충실한 근거를 든다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리스의 민주주의이고, 둘째는 그리스 고전 시대의 사상이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근대 민주주의로 부활했으며, 그리스 시대의 철학과 정치사상은 오늘날까지 서양 사상의 원류가 되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 이전까지 세계의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민주주의 비슷한 게 발달한 경우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발달시킬 만한 특별한 능력이라도 지녔다는 걸까?

 

물론 그것은 특별한 능력따위가 결코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폴리스 체제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중심지도 없고 지형상 항구 중심의 도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탓에 폴리스가 발달했다. 폴리스 체제는 제국체제처럼 중앙집권을 우선시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그것을 지향하지도 않았다정치만이 아니라 그리스의 종교도 중앙 집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스의 종교는 대표적인 다신교다. 하지만 같은 다신교라해도 이집트나 페르시아, 인도의 경우 최소한 신들의 서열은 정해져 있고, 최고신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를 본받아 그리스인들도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최고신으로 제우스를 설정했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보듯이 제우스는 엄숙한 최고신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신이다. 걸핏하면 인간 세상에 개입하는 데다 신들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는 존재도 아니다(심지어 그는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형이 아니라 동생이다). 더욱이 그리스 종교에서는 신화만 있을 뿐 경전이 없고, 신탁을 주관하는 무녀 외에는 별다른 사제도 없다.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 세상에 율법을 강요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스스럼없이 뒤섞여 살아가는 존재다. 이와 같은 느슨한종교 역시 그리스 민주주의의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그리스 민주주의는 결코 시대를 앞서간 제도도 아니었고, 같은 시대의 다른 체제들에 비해 선진적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왕정이나 제정이 더 선진적인 정치제도였다(아테네가 제국으로 발돋움하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인데, 결국 그리스를 뒤이은 로마시대에 제정이 성립한다). 문명이 어느 정도 발달하면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의 집중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테네를 제외한 다른 폴리스들에서는 특별히 민주주의라 할 만한 제도가 없었고 왕정이나 다름없었다.

 

민주주의의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물론 시민층을 기반으로 한 체제였으나 시민주권’(오늘날의 국민주권)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선 참정권을 가진 시민들의 비율이 너무 적었을 뿐만 아니라페리클레스 시대에 아테네에서 참정권을 가진 시민은 약 4만 명이었는데, 이는 3만 명의 외국인과 20만 명의 노예를 제외하더라도 시민 총수의 4분의 1을 밑도는 수치였다, 당시 아테네는 여전히 가문과 신분이 중시되는 사회였다. 다만 미케네 시대에 뿌리를 둔 전통적 지주 귀족 대신 해상무역을 통해 재산을 모은 재력가의 발언권이 커졌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테네의 민주정은 종래의 귀족정(과두정)이 변질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여러 세력 가문이 돌아가며 정치를 담당하는 제도는 사실상 임기가 정해진 왕정이나 다를 바 없으므로 아테네의 민주정은 왕정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제도의 면에서 본다면 그리스 민주주의는 후대의 서양 역사가들에 의해 다소 과대하게 평가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 민주주의의 진보적인 성과는 제도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찾아야 할까? 바로 자유로운 개인주의다. 평민층이 성장하면서 아테네 사회는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기풍으로 흘렀다. 게다가 참정권이 폭넓게 인정되면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와 수사학이 발달했다. 그 소산물이 그리스 사상이다. 종교적 권위의 부재가 개인주의를 낳았고, 정치적 권위의 부재가 논리를 낳았으니, 그리스는 결국 있어야 할 게 없었던 덕분에서양 문명의 모태가 된 것이다.

 

 

민주 선거 아테네의 시민들이 조약돌로 투표를 하는 모습이다. 지금은 시민이라고 하면 일반 국민을 지칭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유권자는 일반 평민이 아니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귀족과 재력가였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민주주의가 가능한 이유

이오니아에서 탄생한 철학

그리스로 옮겨온 철학

서양 사상의 골격이 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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