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싹
아테네는 민주정과 제국 체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었다. 아테네가 번영하는 만큼 폴리스들은 결집력이 점점 약해지고 반감이 심해졌다. 그렇게 보면 아테네는 처음부터 제국이 되기에 자격 미달인 셈이었다【고대 제국(당시에는 페르시아와 중국)은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외적 조건으로 속국을 거느리는 것인데, 폴리스들의 군자금을 아테네에 바치는 조공으로 본다면 아테네도 그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국의 내적 조건, 즉 중앙집권은 아테네가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갖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설사 지리적 중심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테네는 제국으로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테네가 제국 체제를 지향한 것은 그리스의 폴리스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스파르타의 불만은 가장 심했다. 아테네 못지않게 전쟁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그전에는 히피아스를 추방해 아테네의 참주시대를 끝장내준 적도 있잖은가?
게다가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역을 거느리고 있었다. 바로 펠로폰네소스의 폴리스들이었다. 사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 전쟁이 벌어지기 한참 전인 기원전 6세기 중반에 이미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하고 그 맹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전후에는 아테네가 주도한 델로스 동맹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는 그 동맹의 구속력이 훨씬 강했다. 두 동맹이 길고 짧은 것을 실제로 재보기로 한다면 결과는 어떨지 몰랐다.
그렇잖아도 잔뜩 곤두서 있는 스파르타의 신경을 아테네가 건드리는 사건이 터졌다. 아테네가 드디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까지 세력을 뻗쳐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테네의 힘은 이미 동부 지중해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인구는 증가 일로, 무역은 팽창 일로에 있는 아테네는 서부 지중해로 진출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근거지가 필요한데, 가장 좋은 후보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였다(그리스 반도의 서쪽은 높은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고 해안 지대가 좁아 폴리스가 발달하지 못했다).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코린토스와 메가라를 을러대자 스파르타는 거세게 반발했다. 자칫하면 전쟁이 일어날 판이었으나 외적을 상대한 큰 건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 전쟁이 벌어진다면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기원전 446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30년 동안 전쟁을 벌이지 않기로 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것이 미봉책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양측이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아테네는 서부 지중해로 진출해야 했고, 스파르타는 그것을 막아야 했다. 스파르타는 에게 해를 아테네에 양보하는 대신 당시 아직 그리스에 비해 후진 지역인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쪽 지중해를 관장하려 했다. 스파르타로서는 굴욕을 감수하면서 지중해 동부의 노른자 해상권을 포기하고 ‘서부 개척’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아테네는 노른자든 흰자든 스파르타와 나눌 마음이 없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전쟁의 기운은 그전에 이미 숙성되어 있고 전쟁이 벌어질 시점에는 다만 방아쇠만 필요할 뿐이다. 그 방아쇠는 외부에서 당겼다. 약정된 휴전 기간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기원전 433년에 코린토스의 식민시로 있던 코르키라가 코린토스와 반목하면서 아테네 측에 붙었다. 스파르타는 이제 전쟁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기원전 404년까지 무려 30년을 끌면서 그리스의 거의 모든 폴리스가 연관되는 전쟁으로 확산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 원형극장 그리스 문명은 아테네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진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대극장을 위에서 본 모습이다. 얼추 봐도 객석이 수천 석은 된다. 한가운데 원형 무대에 선 배우들은 객석 가장 높은 곳의 관객들을 위해 대사를 아주 크게 발음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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