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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3부 뿌리② - 5장 추락하는 제국, 위기는 위기를 부르고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3부 뿌리② - 5장 추락하는 제국, 위기는 위기를 부르고

건방진방랑자 2022. 1. 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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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는 위기를 부르고

 

 

지금까지 우리는 로마 황제들의 치적을 소상히 밝혀가며 로마의 역사를 더듬어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다. 말기적 증상을 완연하게 보이는 3세기 이후의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가 거의 무능력하고 무의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선 재위 기간이 극히 짧고 권력이 대단히 불안정했다. 카라칼라의 제위를 이은 마크리누스(Marcus Opellius Macrinus, 164~218)는 겨우 1, 그다음 황제인 헬리오가발루스(Heliogabalus, 204~222)는 겨우 4년밖에 재위하지 못했다. 심지어 235년부터 284년까지 50년 동안 로마 황제는 무려 26명이었으니, 평균 재위 기간이 2년도 채 안 된 셈이다. 가히 황제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다(세베루스가 제위에 오른 193년부터 284년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군인 출신 황제들이 연이어 나왔기 때문에 군인황제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로마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갔다. 부자들은 재산이 크게 줄어들었고, 서민들은 가난해졌다. 무역이 위축되었고, 농토가 버려졌다. 게다가 전염병이 나돌았고, 아시아 속주에서는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 이것만 해도 총체적인 위기였으나 더욱 큰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로마 세계를 둘러싼 바깥의 정세 변화였다.

 

동쪽에서는 수백 년 동안 로마에 대항하던 파르티아가 마침내 226년에 멸망했다. 그렇다고 로마가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일어나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북쪽에는 더 직접적인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트족이었다. 지금의 루마니아가 고향인 그들은 257년 소아시아 북부를 점령해 로마 제국의 중요한 육로를 봉쇄했다. 바깥에서 일어난 불길은 금세 내부로 번졌다. 중앙정부를 믿고 의지할 수 없게 된 속주들이 저마다 독립을 부르짖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로마 황제는 기발한 방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변방에 위치한 속주들의 군대를 아예 승인해버린 것이다. 이미 로마 시민권이 제국 전체로 확대된 상태이므로 구실도 좋았다. 모든 로마 시민은 로마 제국을 수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이 방법이 효과를 본 덕분에 268년부터 282년까지 3대에 걸쳐 제위에 오른 일리리쿰 출신 황제들은 속주군을 이용해 고트족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상황이 호전된 것은 잠시뿐이었고, 로마의 국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속주를 승인한 결과 전통의 막강한 로마 군단은 유명무실해졌고, 오히려 속주군이 군벌을 이루어 로마의 용병과 같은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제국이 부패하고 쇠락하기 시작하면 각지에서 사병 조직을 거느린 군벌들이 생긴다. 중국의 경우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2세기에 진 제국을 멸망시킨 항우와 유방도 그랬고, 8세기 당 제국 말기 변방의 번진(藩鎭)들은 그 대표적인 예다. 20세기 초 청의 멸망으로 중국의 제국사가 끝난 직후 북양군벌들은 사병 조직을 기반으로 중앙 정권을 위협했다.

 

로마는 결국 용병으로 망하게 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3세기에 망했어야 할 늙은 제국의 수명이 200여 년 더 늘어나게 된 것은 제국 말기에 등장한 두 명의 걸출한 황제 덕분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45~316).

 

 

페르시아의 부활 로마를 그토록 괴롭히던 동쪽 변방의 파르티아는 동방의 또 다른 강국으로 성장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했다. 사진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은 접시인데, 페르시아의 왕이 활로 사자를 사냥하면서 발밑에 사자 한 마리를 짓밟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로마인들이 봤다면 차라리 파르티아가 있는 게 낫겠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몰락의 시작

위기는 위기를 부르고

수명 연장조치

두 번째 의사

정치적 무기가 된 종교

제국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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