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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4부 줄기 - 2장 또 하나의 세계 종교, 부활한 오리엔트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4부 줄기 - 2장 또 하나의 세계 종교, 부활한 오리엔트

건방진방랑자 2022. 1. 8.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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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한 오리엔트

 

 

이슬람 제국이 탄생하고 성장함에 따라 인류 문명의 고향이었던 오리엔트는 옛 페르시아가 무너진 이후 1000년 만에 다시 세계 문명의 중심지라는 위상을 되찾았다. 로마가 멸망한 뒤 지중해 문명이 서유럽 세계로 전달되기까지의 공백기(서유럽의 중세 초기에 해당하는 기간)를 틈타 문명의 서진이 잠시 유보되고 동쪽으로 회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들 중에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군주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이 시기에는 아랍 문화가 절정기에 달했다. 특히 아바스 왕조는 피정복지의 원주민들을 신분과 인종의 차별없이 관직이나 학술계에 많이 받아들였으므로, 이 시기에 이슬람 문화는 이슬람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 문화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게다가 이슬람 문화권이 중앙아시아로 확산되어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중국의 당 제국과 교류하게 된 것은 비단옷에 꽃을 더한 격이었다. 실제로 당의 비단에 아랍 특유의 꽃무늬(아라베스크) 장식이 더해진, 문자 그대로의 금상첨화도 있었겠지만, 헬레니즘과 페르시아의 찬란한 문화적 전통에다 새로이 이슬람 문화가 더해진 것도 금상첨화였다.

 

그러나 아랍 문화의 진정한 은 과학이었다. 의학과 물리학, 천문학천문학 지식은 대양을 항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바다가 없는 아라비아에서 천문학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다는 없어도 그에 준하는 것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막이다. 부족민들을 이끌고 넓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부족장은 천체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어야만 시간에 맞추어 다음 오아시스까지, 최소한 그들이 있는 곳까지 부족민과 가축 들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한낮에는 이동이 불가능했으므로), 오히려 바다가 있는 지중해 세계에 비해 아라비아에서 더 천문학이 필요했다는 것은 곧 지중해를 항해하기보다 아라비아 사막을 이동하는 게 더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된다등 근대 자연 과학의 학문들이 발달한 것은 당시 아라비아에서 이루어진 성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화학은 연금술의 형태로 유럽에 전해짐으로써 중세 유럽의 침체된 과학의 명맥을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중세 서양의 전설에서 마녀가 각종 약품을 실험하는 일종의 화학자로 등장하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화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chemistry는 연금술(alchemy)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나온 말이며, 알코올(alchohol)과 알칼리(alkali) 같은 과학 용어들도 마찬가지다(‘al’은 아랍어의 정관사에 해당한다).

 

화학과 더불어 아랍 자연과학의 위대한 유산은 수학이다. 아라비아숫자와 algebra(대수)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아랍 문화권에서는 수학이 크게 발달했고, 삼각함수의 개념도 생겨났다(아랍인들은 인도에서 ‘0’의 개념을 도입했는데, 사실 아라비아 숫자도 인도 숫자를 본떠 만든 것이다. 당시 인도가 유럽과 직접 교류했다면 오늘날 인도 숫자라는 명칭을 써야 했을 것이다).

 

 

신학보다 과학을 택한 알라 유럽이 신학에 빠져 있을 무렵, 아라비아에서는 과학이 만개했다. 그림은 천문학을 연구하는 이슬람 학자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보존,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유럽의 르네상스는 없었을 것이다.

 

 

굳이 피타고라스를 끌어대지 않더라도 수학은 철학과 통한다. 수학이 발달한 아랍 문화권에서는 철학도 크게 발달했다. 이슬람 학자들은 종교상의 쟁점들을 다루기 위해 옛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 의존했다. 그에 따라 그리스가 쇠퇴한 이후 오랫동안 유럽 세계에서 잊혔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리엔트에서 충실히 계승되었다. 특히 12세기 아베로에스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중세 서유럽의 스콜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가운데는 원래 그리스어로 쓰였음에도 아랍어에서 유럽어로 번역된 게 많다). 이렇게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그리스 고전의 연구는 이후 서유럽 세계가 중세를 벗어나 르네상스로 접어드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르네상스라는 말 자체가 고전 문화의 부활이라면, 아랍 문화는 그 부활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학문의 발달만 가지고 문화의 중심 노릇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학문과 더불어 문화의 중요한 기둥을 이루는 것은 예술이다. 주로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장식하는 용도로 발달한 아랍 미술은 아라베스크라는 독특한 양식을 이루었으며, 아라비아의 모자이크 기법은 아랍 세계가 끝내 정복하지 못한 비잔티움 제국으로 전달되어 비잔티움 예술의 꽃이 되었다. <알라딘>이나 <신드바드의 모험> 같은 만화영화에서 보는 둥근 지붕의 아름다운 왕궁과 모스크 건축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음악에서는 현악기의 발달이 주목할 만하다.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류트는 에스파냐에 전달되어 오늘날 에스파냐를 기타 음악의 강국으로 만들었으며(‘기타라는 악기 이름 자체도 아랍어다), ‘아라비아풍이라는 독특한 음악적 분위기를 이루었다.

 

아랍 문화권은 유라시아의 허리에 해당하는 지역적 특성상 다른 지역들의 문화를 수입하기도 쉬웠고, 아랍 문화를 여러 지역으로 전파하기도 쉬웠다.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아랍 문화의 더 중요한 의의는 후자의 측면에 있다. 즉 아랍 문화는 유럽의 동쪽 끝(비잔티움)과 서쪽 끝(에스파냐)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점에서 더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유럽은 이슬람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냄으로써 정치적·종교적 정체성을 보존한 채 아라비아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결과 서양 문명의 뿌리를 싹으로 틔워내고 줄기로 키워내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세계사적으로 보면 아라비아는 조연이고 유럽이 주연이었던 셈이다.

 

 

칼리프의 생활 초기 칼리프들에 비해 제국이 안정된 아바스 시대의 칼리프들은 점차 종교적 풍모를 잃고 정치적 군주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그림은 칼리프의 생활을 보여준다. 맨 위층에서는 칼리프가 목욕을 하고 있고, 가운데 층에서는 하인들이 칼리프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으며, 아래층에서는 칼리프가 편안히 누워 쉬고 있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사막의 바람

제국으로 성장한 공동체

문명의 충돌

서아시아 세계의 형성

부활한 오리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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