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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에필로그 - 서양 문명의 전 지구적 이동, ‘글로벌 문명’ 다음은 ‘로컬 문명’으로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에필로그 - 서양 문명의 전 지구적 이동, ‘글로벌 문명’ 다음은 ‘로컬 문명’으로

건방진방랑자 2022. 1. 3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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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서양 문명의 전 지구적 이동, ‘글로벌 문명다음은 로컬 문명으로

 

 

1. 명령과 계약

 

서양사의 길고 거친 탐색이 끝났다. 보통 서양사라고 하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끝나고, 그다음은 역사라기보다 시사에 속한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시대, 즉 현대는 적어도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역사로 분류될 것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서양이나 동양이라는 지역의 역사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세계사가 된다. 서양사와 동양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맨 끝장(7)에서는 전후 지금까지 세계사의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1만 년에 달하는 장구한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압축했으니 아무래도 거칠 수밖에 없다. 역사 읽기를 끝맺는 이 자리에서 그것을 다시 압축해 더 거칠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 오랜 역사를 통해 조금씩 형성되어 오늘의 서양 세계를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두 가지 요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초점으로 삼아 서양사와 동양사를 비교하면서 책을 매듭짓기로 하자.

 

우리는 보통 자본주의가 서양사의 근대, 그러니까 얼추 18세기 경에 생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배운다. 역사학자에 따라 약간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데, 아무리 멀게 잡아도 중세가 해체되는 15세기보다 더 거슬러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서양사를 살펴본 결과는 다르다. 학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체적 양태에 대한 분석을 전거로 삼아야 하니까 그런 학설을 꾸밀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가 파악한 자본주의의 뿌리는 사실 무척 오래다.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국경을 수비하기 위해 용병(주로 누미디아 기병)을 고용했다. 람세스 2세와 무와탈리스가 맞붙은 카데시 전투에서도 용병의 역할(람세스를 구한 가나안군)이 분명히 드러난다.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은 갈리아 용병을 충원해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로마 제국은 결국 게르만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되었다. 용병(mercenary)은 상인(merchant)과 같은 어원을 가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정치적인 성격보다는 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 즉 용병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누구의 명령을 받들어서라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여기서 서양 특유의 계약이라는 관념을 볼 수 있다.

 

남유럽에 로마 제국이 있었을 무렵 중국에는 한() 제국이 있었다. 두 제국은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고 각기 동양과 서양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성격은 상당히 달랐다. 한은 주변의 속국들이 황제(천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직적 체제였으나, 로마 제국은 속국(속주)들이 나름대로 로마와 동맹 관계, 즉 일종의 계약 관계를 맺은 수평적 체제였다. 두 제국의 이런 차이는 이후 동서양의 역사에도 반영된다.

 

예를 들면 비슷한 시기에 전개된 동서양의 대규모 원정에서도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유럽의 십자군은 교황 우르바누스의 선동으로 시작되었으나 누구의 명령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제멋대로 행동했다. 원정 도중에 약탈을 통해 각자 잇속을 챙겼고, 심지어 같은 그리스도교권인 콘스탄티노플에 라틴 제국이라는 괴상한 제국까지 세웠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을 침략한 몽골 원정군은 십자군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대칸(황제)의 명령을 받아 원정에 나선 것이었으므로 행동이 훨씬 일사불란했고 약탈보다는 파괴를 일삼았다.

 

한마디로 동양식 체제는 명령을 기반으로 했고 서양식 체제는 계약을 위주로 했다. 물론 이것을 자본주의와 직결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서양의 제국이나 군사 행동에서 늘 정치적 측면보다 경제적 측면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발생에 유리한 배경이 된다(그래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같은 사람은 자본주의적 정신의 뿌리가 탄생한 시기를 수천 년 전으로 잡았다).

 

 

서양 문명의 끊임없는 이동 후엔

 

그보다 더 직접적인 사례는 은행과 신용의 개념이다. 12세기 북이탈리아에서는 중세 자치도시들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환전상이 생겨났고, 이들이 근대 은행의 맹아를 이루게 되었다. 알다시피 은행이란 돈을 맡겨두는 곳이다. 무엇을 믿고 자신의 귀중한 재산을 맡길까? 그것은 바로 신용이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은행의 탄생과 동시에 신용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그러나 동양의 역사에서는 상인들 간에 어음을 사용한 지는 오래되었어도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은행은 매우 생소했다. 장사꾼은 신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신용의 관념이 없지 않았으나 도덕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을 뿐 경제의 개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상인들이 필요에 따라 자체로 금융과 은행 제도를 만들었으나 동양에서는 민간의 영역이 크지 않고 관이 보증하는 게 아니면 신용을 확보할 수 없기에 신용이 제도화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정치적 표현인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의 주권을 뜻하는 민주주의는 동양 역사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나기 어려운 제도였다. 기원전 221진시황(秦始皇)이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이후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2000여 년 동안 동양 사회는 제국의 체제와 질서로 편제되었고, 그 질서의 정점에는 언제나 천자가 있었다. 천하의 모든 것은 천자의 소유였고, 천하의 뭇 백성들은 천자를 섬겨야 했다. 사마천이 말했듯이 중화 세계는 천자가 북극성처럼 불변의 존재로 군림하고 그 주변을 제후들이 돌면서 천자를 보필하는 동심원적 중앙집권 체제였다.

 

서양사에서 동양식 제국 체제와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고대 로마 제국일 것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은 중국의 역대 어느 제국보다도 중앙집권력이 약했다. 그나마 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 1000년에 이르는 중세는 교회가 문명의 동질성을 유지할 뿐 정치권력의 중심이 부재한 극도의 분권 체제였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서양사에서는 일찍부터 의회가 구성되었으며, 신분제가 약해지는 근대에 접어들면 그 의회가 평민을 대표하는 기구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 의회를 바탕으로 근대 민주주의가 성립했다.

 

이처럼 서양사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이 길고 오랜 뿌리를 지니고 있다면, 동양에 사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양에서 수백, 수천 년 동안에 걸쳐 무수한 피와 땀을 먹으며 키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체득하기 위해 동양의 우리도 역시 그와 같은 기간이 필요할까? 그렇지는 않다. 이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서양의 것만이 아니라 세계가 공유하는 제도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5000년을 거치며 서양 문명은 지구를 서쪽으로 한바퀴 돌았다. 서아시아에서 생겨난 서양 문명의 싹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뿌리를 내렸고, 서유럽에서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는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전되었고, 거기서 또 태평양 건너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그 결과, 싫든 좋든 서양 문명의 최종 결과물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점차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큰 역사로 보면 이것은 오리엔트에서 탄생한 이후 내내 서쪽으로 이동하고 확산된 서양 문명이 드디어 지구를 완전히 한 바퀴 돈 것에 해당한다.

 

현재 이슬람 문명권인 이곳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이식되면 서양 문명의 이동은 완전히 끝난다. 2010년부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 불기 시작한 민주화 운동은 어쩌면 그 마지막 행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과정이 완료된 다음은 어떻게 될까? 서양 문명의 끊임없는 이동으로,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지구가 단일한 문명권으로 묶이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렇게 명실상부한 글로벌 문명이 성립한 다음의 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그 예상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글로벌 다음에는 로컬이다. 전 세계가 글로벌화된 이후에는 로컬의 시대가 될 것이다. 세계가 기본적으로 동질적인 문명권으로 묶이고 나면 과거처럼 특정한 문명이 압도하는 시대는 종식된다. 이후 세계는 대단히 다원화될 것이며, 기존의 전통 문명들이 그 다원화의 축으로 기능할 것이다. 동아시아 문명, 이슬람 문명, 심지어 글로벌화를 주도한 서양 문명도 각각의 로컬 문명이 될 것이다. 그 밖에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극지의 소문명들도 각기 로컬로 자리 잡을 것이다.

 

또한 각 로컬 문명도 더 하위 로컬 문명으로 잘게 쪼개질 것이다. 서양 문명은 동유럽 서유럽 북유럽 등으로 세분화되고, 동아시아 문명은 한··일 로컬로 나뉠 것이며, 이슬람 문명과 인도 문명도 단일한 로컬 문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역·종교·문화 등을 기준으로 잘게 나뉘어 복잡한 양상을 이룰 것이다.

 

흔히 글로벌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인류 역사 전체가 글로벌화의 과정이었다. 글로벌 시대라는 말은 앞으로 계속 세계가 단일한 글로벌 문명권으로 남을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글로벌화가 완료되는 지금은 과도기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본격적인 로컬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제 하나의 문명이 힘으로 다른 문명을 압도하고 정복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정과 평화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다양한 로컬 문명들은 더 치열하게, 더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문명은 힘 있는 로컬로 발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는 문명은 로컬로서의 존재마저 잃게 될 것이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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