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1917년 레닌이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것은 사회주의의 실현인 동시에 변질이었다. 사회주의 이론을 구성한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생겨나야 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사회에서 그 생산력을 감당하지 못해 자본주의가 자동 붕괴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생산양식으로 이행해야 했다. 그 계기가 사회혁명의 형태를 취할 수는 있지만 경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혁명이 될 수 없었다【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특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기존의 생산 관계, 또는 이전까지 적합했던 소유관계와 갈등을 빚게 된다.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힘이었던 이 관계는 오히려 생산력을 제약하는 질곡으로 변화한다. 그때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어떠한 사회질서도 그 내부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모든 생산력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 다. 또한 그 물질적 존재 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충분히 성숙하기 전까지는 새롭고 고도한 생산관계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러시아에서(경제적이 아닌)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 현실 사회주의가 탄생한 것은 두 가지 문제를 낳았다. 첫째, 자본주의 제도를 통한 경제 발전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분배의 평등을 구현할 경제적 역량이 모자랐다. 둘째, 러시아는 혁명 직전까지도 중앙집권적 제국 체제였으므로 자본주의의 정치적 표현인 의회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역사적 과정이 결여되어 있었다(편의상 경제적 문제점과 정치적 문제점으로 구분했지만 실은 하나다. 자본주의는 의회민주주의의 경제적 표현이며, 의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은 두고두고 현실 사회주의의 굴레가 되어 결국 사회주의 실험을 실패로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이념의 약점 거칠게 도식화하면 냉전 구도는 경제가 중심인 체제와 이념이 중심인 체제로 양분할 수 있다. 전자는 풍요로운 경제에 비해 이념이 약했고, 후자는 반대로 강력한 이념을 뒷받침할 경제가 약했다. 사진은 냉전 시대가 정점에 달한 1970년대에 물건을 마음껏 구할 수 없어 닥치는 대로 장을 본 소련 여성의 모습이다.
앞서 본 것처럼 사회주의 신생국인 소련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신경제정책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소비에트 지도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단계의 생략을 뒤늦게 만회하려는 노력이었다. 정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로 진입하려면 자본주의 단계를 통한 생산력의 발전이 필요한데, 그 단계가 생략되었기에 인위적으로 공백을 메우려 한 것이다. 혁명이 끝난 뒤에 비로소 역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행정이 거꾸로 되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일단 즉각적인 효과는 있었다. 혁명 직후 붕괴 직전에 놓였던 소련 경제는 신 경제정책이 끝날 무렵 상당히 건강을 되찾았다. 신생국 소련은 일약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급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냉전 체제의 한 우두머리가 된 데는 그런 배경이 작용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바깥이 화려해질수록 안이 더욱 높아가는 옛 ‘제국 체제’의 망령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련이 이룬 경제성장은 제국 체제를 연상시키는 중앙집권, 국가 성장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이 결합된 소산이었다.
제국 체제라면 당연히 황제가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 지도자가 바로 그런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은 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병사했지만, 그의 뒤를 이어 30년간 철권통치를 한 스탈린을 비롯해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 소련의 최고 지도자들은 사실상 ‘사회주의적 황제’였다. 서유럽의 경우 절대주의 시대에도 의회가 나름대로 기능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사회주의적 황제가 권력을 독점한 20세기의 현실 사회주의는 정치에 관한 한 300년 전 서유럽의 절대주의보다도 못하다. 역사의 진보를 기치로 내건 사회주의가 극히 보수적인 체제를 취했다는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다【이 점은 또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1949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이 혁명 후 수십 년 동안 단독 집권했고, 그 뒤에도 화궈펑, 덩샤오핑, 장쩌민으로 이어지는 1인 집권 체제를 내내 유지했다. 그 밖의 동유럽 국가들과 쿠바, 북한 등도 정당과 의회의 기능이 구분되지 않고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으며, 공산당의 최종적 지배자는 1인이었다. 심지어 북한 같은 경우는 권력이 한 가문에서 세습될 정도다. 이것을 ‘왕조식 사회주의’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이런 체제에도 사회주의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 요리사와 식인종 레닌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현실 사회주의는 이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훨씬 더 튼튼해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후계자가 하필 스탈린이었다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의 신생 사회주의 국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없애버렸다. 사진은 병상의 레닌과 거리를 활보하는 스탈린인데, 냉전 시대에 프랑스에서 나온 어느 책에서는 레닌을 요리사에, 스탈린을 식인종에 비유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사회주의권을 블록화하려 한 것은 반대 진영에 맞서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과거의 유제인 제국 체제의 ‘본능’에서 탈피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동유럽 지역은 제국의 속주‘에 해당한다). 그래도 전선이 둘로 갈려 매우 단순했던 냉전 시대에는 그런 체제가 어느 정도 통했다. 하지만 전 세계가 다원화되고 있는 시대적 추세에 그런 낡은 발상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그런 점에서도 냉전 체제는 역시 과도적이었다).
현실 사회주의는 소련의 코앞에서부터 붕괴되었다. 1980년 폴란드에서 레흐 바웬사(Lech Watesa)가 공산당과 무관한 자유노조를 결성한 것을 신호탄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5년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Sergeyevich Gorbachyev)는 대외적으로 글라스노스트(개방), 대내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내세우며 시대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수용하고자 했으나 사회주의의 출발점인 70년 전부터 잘못 꿴 단추를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의 조치는 사회주의 블록의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붕괴 현상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은 1989년이다. 이해에 폴란드에서는 자유노조 출신의 총리가 집권해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18년 동안 동독 공산당을 지배한 호네커가 대규모 시위로 실각했다. 계속해서 헝가리에서는 의회가 324대 4라는 압도적인 표결로 야당을 인정함으로써 공산당 지배 체제가 무너졌고,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도 몰락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공산당에 반대하던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었다.
이런 사태가 잇따르자 현실 사회주의의 본산인 소련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했다. 1991년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급진 개혁파인 옐친(Boris Yeltsin)이 압승을 거두었고, 8월에는 고르바초프가 공산당의 해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해체된 것은 공산당만이 아니었다. 8월 말에서 9월 초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발트 3국이 며칠 차이를 두고 차례로 독립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 자체가 유지될 수 없음을 뜻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유럽 지역의 공화국들만이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이 하나둘씩 독립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은 완전히 해체되었고, 1993년에는 소련의 국호가 러시아 연방으로 개칭됨으로써 유럽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막을 내렸고, 냉전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 청바지의 지도자 다원화를 향한 세계사적 흐름은 체제의 장벽마저도 무너뜨렸다. 처음부터 다원화가 보장되어 있었던 서양 세계에서는 인위적 블록화가 최소한의 통합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사회주의권에서 시도한 블록화는 결국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사진은 그 시도를 거부하고 나선 폴란드 자유노조의 지도자 바웬사다. 그가 입은 청바지가 그의 이념을 상징하는 듯하다.
인용
'역사&절기 >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사, 에필로그 - 서양 문명의 전 지구적 이동, ‘글로벌 문명’ 다음은 ‘로컬 문명’으로 (0) | 2022.01.31 |
---|---|
서양사, 7부 열매② - 7장 유럽을 벗어난 유럽 문명, 미국의 지위와 역할 (0) | 2022.01.31 |
서양사, 7부 열매② - 7장 유럽을 벗어난 유럽 문명, 다원화를 향한 추세 (0) | 2022.01.31 |
서양사, 7부 열매② - 7장 유럽을 벗어난 유럽 문명, 체제 모순이 낳은 대리전 (0) | 2022.01.31 |
서양사, 7부 열매② - 7장 유럽을 벗어난 유럽 문명, 전혀 다른 전후 처리 (0) | 2022.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