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③강: 외로움에 사무칠 때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제 ‘트위스트 교육학’ 강의도 반환점에 들어서고 있다. 오늘은 어찌 보면 딱 반환점을 찍는 날이라 할 수 있다.
반환점이란 말은 단순히 일직선으로 달려 어느 한 지점을 찍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아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만해도 반환점을 찍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반환점을 찍고 돌아서는 순간 나의 생각, 삶의 양식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처음 지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 전의 나와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갈 땐 몰랐지만, 돌아올 땐 그 전의 나와는 달라져 있다
반환점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이 저주에 걸린 하쿠를 구하기 위해 제니바의 집으로 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쉽다.
센에겐 제니바의 집에 갈 수만 있고 돌아올 수는 없는 ‘One Way Ticket’이 있었다. 이 티켓은 가마할아범이 센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준 것이다. 당연히 갈 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기에 엄청난 결단을 요구한다. 그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영화 첫 장면에서 나오던 치히로였다면,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온갖 경험을 하며, 여러 돌파구를 마련하여 여기까지 달려온 그였기에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앉아 있진 않았다. 그래서 고민을 하지도 않고 하쿠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원 웨이 티켓을 받아들고 제니바의 집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잡아먹으려 했던 가오나시顔無し가 따라오자, 그까지 데리고 제니바의 집으로 향한다.
▲ 원 웨이 티켓으로 제니바의 집에 찾아가는 센. 그 옆엔 무려 3명의 친구들까지 동행한다. 반환점을 가는 자, 비장할 필욘 없다.
제니바의 집은 센에겐 하나의 반환점이라 할 수 있다. 그 반환점을 돌고 나면 다시 목욕탕으로 돌아갈 것이다(그곳엔 아빠와 엄마가 있기 때문에 구하러 가야 한다). 겉으로 보기엔 센이라는 한 아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센은 예전의 겁 많고, 소심하며, 뽀루퉁한 표정을 짓는 아이가 아니라, 대범하며, 주위의 친구들을 어우러지며, 얼굴엔 생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 아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환점이란 이처럼 존재의 심연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보여주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셉 캠벨Joseph Campbell(1904~1987)은 그의 책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해 놨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1996, 대원사, 29쪽.
한 지점을 통과했지만, 그곳에서 우린 지금껏 느끼던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것들을 느끼며 돌아오게 되어 있다. 외로움이 사무친 곳에서 세계를 만나고, 밖으로 나갔지만 나의 심연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의 장 말이다. 바로 그곳이 반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도 동섭쌤의 강의를 들으며, 반환점을 돌고 나면 처음의 자기와는 사뭇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린 그런 자신의 모습에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 초반의 치히로에게선 볼 수 없던 늠름함과 활짝 핀 미소가 보인다. 반환점이란 이런 것.
비 오는 날, 강의 들으러 가기의 어려움
이 날도 첫 강의를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땐 강의 시간에 잠시 비가 내리는 정도였지만, 이 날은 그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다음 날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기분은 더욱 멜랑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날엔 방에 틀어박혀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날씨가 전해주는 음울함과 애잔함에 흠뻑 빠져들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오늘은 날씨 핑계로 쉴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럴 때 분신술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그러질 못하니 결단을 해야만 했다.
▲ 1강 때의 그 날처럼 비가 내린다.
그래도 반환점을 돌아가는 날이라는 생각과 함께, 겨우 다섯 번의 강의로 계획되어 있음에도 하루를 빠진다는 건 좀 그랬기 때문에, 마음을 다듬고 나갔다.
막상 에듀니티로 가고 있으니, 언제 갈등했나 싶게 기분은 절로 좋아진다. 반팔 흰색 티에 분홍색 긴팔 남방까지 걸치고 가니, 엄청 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젠 반팔 반바지가 어울리는 그런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봄날은 간다.
▲ 이제 긴팔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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