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없는 초기 기독교
당시 기독교는 형성기였으며 구전(口傳)과 예배제식만 있었지 경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이 없었던 기독교!’
이것이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1세기에만 해도 교회에서 가장 권위를 갖는 전통은 사도성(Apostolicity)의 기준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직전제자의 말이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경전적 기준이었다. 좀 너그럽게 봐준다면 직전제자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사람의 말까지는 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울의 당대에도 바울이 예수의 직전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진짜 사도로 간주될 수 없다는 비방이 많았다. 바울에게 사도의 권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그를 까댔던 것이다. 그러한 비방은 인간적으로 바울을 몹시 괴롭혔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사도가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했단 말입니까? (고전 9:1)
나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고후 11:5)
나는 기적을 행하여 내가 진정 사도라는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다. (고후 12: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갈 1:12)
그러나 2세기 초에 이르면 사도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죽었으며 교회내의 구술 전통(oral tradition)도 심각하게 변형ㆍ왜곡ㆍ타락되기 시작한다. 원래 구술전통이라는 것은 인도의 바라문이나 유대의 제사장과 같이 암송을 전담하는 전문적 권위계급이 특수하게 존속될 때만이 가능한 것인데 초대교회는 그 개방적 성격상 그러한 특수계층이 존재할 수 없는 도떼기시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성경(카논, kanōn)이라는 권위있는 기준이 없었고, 또 그러한 기준을 강요할 수 있는 권위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사도성을 가장하여 경전을 저작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경전저작을 격려하였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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