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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7장 마르시온의 등장 - 신약성경의 문학적 형식과 홀로서기의 어려움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7장 마르시온의 등장 - 신약성경의 문학적 형식과 홀로서기의 어려움

건방진방랑자 2022. 2. 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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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문학적 형식과 홀로서기의 어려움

 

 

현존하는 성경의 문학적 형식을 보아도 크게 두세 가지 밖에는 없다. 하나는 드라마형식의 전기문학이고, 하나는 여러 목적을 위하여 쓰여진 편지들, 또 하나가 있다면 생각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논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생활하는 과정에서 누구든지 쓸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깊이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은거하면서 수도생활을 하는 승려들은, 저작이 생활화되어 있고 구라가 쎄기로 정평 나 있는 헬레니즘 문화권에서는 누구나 집필을 시도했다. ‘로마인은 말보다는 실행, 헬라인은 실행보다는 말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희랍어를 쓰는 당대의 지식인들은 그칠 줄 모르고 논쟁과 글쓰기를 좋아했다. 이렇게 기독교문화권의 사방에서 경전에 해당되는 문헌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판에, 구약을 폐기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구약은 이미 알렉산드리아에서 권위 있는 셉츄아진트번역을 통하여 정경화(正經化)되어 있었고 기독교 교회 내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전받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가 확보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구약을 둘러싼 유대인들의 경전해석학적 스칼라십의 수준은 당대 지식세계의 최고급 문화였다. 더구나 구약내에는 율법(토라)외로도 예언서(네비임)와 성문서(케투빔)가 들어있다. 예언서에는 예언자들의 외침뿐 아니라 이스라엘역사의 재미난 영웅이야기들이 많고, 성문서 속에는 시편이나 지혜문학, 묵시문학, 그리고 로맨틱한 스토리들이 들어있다. 이 경서 속에는 메시아의 대망,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언의 성취가 들어 있었고, 그리고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설교와 전례(liturgy) 자료로 쓸 수 있는 훌륭한 건덕지가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의 신약 즉 복음이야말로 구약의 성취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고, 율법적 구속력이 없어진 판에 구약이라는 문헌은 기독교의 권위를 입증하는 배경문학으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신생기독교는 홀로서기에는 힘이 부쳤다. 구약이라는 장쾌한 역사드라마를 배경으로 깔고 성장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초기교부들은 생각했던 것이다물론 이때 구약이란 바리새인 전통에서 고수된 히브리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도들에 의하여 편집된 기독교화된 구약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마르시온(Marcion, ?~160)의 정당한 생각은 이단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바울도 이와 같이 말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31)

 

 

사실 이 말은 바울이 율법을 강하게 부정한 후에 유대화파 교인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어조를 좀 부드럽게 만들기 위하여 고안한 정치적 발언일 수도 있다. 마태복음의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5:17)라는 유명한 예수의 말도, 마태복음의 성립이 명백하게 바울의 서한보다 더 뒤늦게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감안할 때, 유대화파나 초기기독교 유대인 주류세력의 강렬한 반발을 의식하면서 가미된 발언일 수도 있다. 뒤에서 상세히 부연하겠지만 예수의 근본사상은 율법의 성취가 아니라 율법의 부정이다. 율법의 부정 그 자체가 율법의 성취라고 근사한 논리를 구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역시 근사(近似)한 논리로 그치고 만다.

 

 

 

 

인용

목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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