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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 심포지움과 희랍신들의 퇴폐성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 심포지움과 희랍신들의 퇴폐성

건방진방랑자 2022. 3. 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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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움과 희랍신들의 퇴폐성

 

 

초기교회에 모여든 헬라세계의 다양한 지식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종교의 개념과는 다른 색다른 종교의 개념과 색깔과 진지함을 원했다. 희랍인들의 언어는 사실 그 언어 자체가 신화적이었다. 그들은 신화의 요람에서 컸다. 그들의 유모가 요람에서 들려주는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신화神話)가 그들의 말의 어휘가 된 것이다. 자라나면서 학교교육에서 배운 시인들의 시나 극작가들의 희곡이 모두 신들의 이야기였다. 어슴프레 땅거미가 깔리고 동네 마실을 가면 약속된 아무개집에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을 보통 심포지움(symposium)이라고 부르는데, 심포지움 장면에는 반드시 삐딱하게 드러누워 술을 마실 수 있는 소파들이 삥 둘러 놓여있고 그 가운데 안팎으로 신들의 그림이 그려진 희랍 항아리가 놓여있다. 이 항아리에는 포도주가 담겨져 있는데, 당시의 포도주는 요새 같이 정제된 고급 술이 아니라 막걸리 같은 걸쭉하고도 색깔이 짙은 술(퀴케온, 요한복음강해87)

 

이었기에 항아리나 잔에 술이 담기면 일체 그 속이 비쳐보이질 않았다. 따라서 술을 퍼마실수록 신들의 그림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서 신에 대한 이야기들은 점점 고조에 달하는 것이다. 이 심포지움은 술 마시기, 시 짓기, 음악연주, 신들에 관한 담론, 위트나 논쟁, 이 모든 것이 반드시 경쟁게임의 형태로 밤을 지새우며 진행되었는데 희랍의 관례로는 남성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분위기가 고조에 달하면 동성연애적 장면이 연출되었고, 호모적 섹스행위조차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었다(현존하는 벽화그림으로 이런 장면들은 정확히 재구성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희랍의 신들은 술이나 처먹고, 근친상간이나 강간, 질투와 음모와 살상을 일삼는 아주 퇴폐적 존재들이었으며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나 상기시킬까, 전혀 인간의 구원과는 무관한 존재들이었다. 계시라든가 예언자전통이라든가 메시아대망과 같은 그런 사상은 냄새도 없었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희랍인들의 고등한 문화적 향수에 배어있는 말이고 춤이고 그림이며 향락일 뿐이었으며 어떠한 도그마적 강요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관된 교리도 없었으며 특정한 성직계급이나 특권이 없었으며 따라서 교회도 없었고 성경도 없었다. 끊임없이 지어지는 이야기들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심포지움만 있었다. 그들의 삶의 고뇌를 넘어서는 어떤 일관된 믿음의 체계를 제공하는 신경(信經, creed)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퇴폐적, 좋게 말하면 인간적이고도 민주적인 신의 이야기(=신화)전통에 젖어있는 희랍인들에게 인간의 구원을 말하는 유일신 신앙은 참으로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만나온 신들은 전혀 도덕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가 선포하는 복음 속의 하나님은 강렬하게 도덕적이었고 매우 체계적인 구원(salvation)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인 명령이고 선포였다.

 

 

 BC 5세기초 파에스툼에 있는 다이버의 무덤 속 한 벽면의 그림, 심포지움의 장면, 가운데 술이 취한 두 남자(호모)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 파에스툼(paestum)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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