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독교의 정점을 향하여
희랍신화에 젖은 헬라인들은 그들 신화 속의 신들의 아류밖에 안 되는 로마신들에게 그리 큰 매력을 느꼈을 까닭이 없다. 옥타비아누스로부터 황제가 신격화된 후로부터 신의 권위는 날로 세속화되어 갔고 추락해갔다. 글라디에이터의 경기를 아무리 숨죽이고 관람한들 내면의 공허감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렇다고 근동ㆍ중동의 모든 이원론적 신앙은 악의 문제를 너무 쉽게 처리해버렸다. 선신과 악신이 갈라진 이원론적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는 인간의 고뇌의 심연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것은 글라디에이터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 이상의 감동을 주기가 어려웠다. 기독교는 최소한 인간의 악을 인간의 타락으로 설명할지언정 이원적 신의 근원을 설정하지는 않는다. 예수는 근원적으로 인성론(theory on human nature)을 설파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행위의 당위성을 인성 자체 내에서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일 뿐이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초대이방교회에 모여든 지식인들은 희랍의 합리적, 로고스적 지적 전통에 젖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기독교라는 인간구원의 종교에 관하여 매우 진지한 해설을 듣기를 원했다. 바로 이러한 헬라ㆍ로마세계의 지적대중의 요구에 부합하여 등장한 제4복음서, 즉 완결판적인 새롭고도 최종적인 복음서가 바로 요한복음서라는 희대의 걸작품이다. 그것은 대승기독교의 정점이며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었다.
▲ 이 에베소의 거리들의 모습은 장엄했던 국제도시의 풍모를 지금도 어김없이 전해주고 있다. 요한은 바로 이곳의 사람이었다. 그의 지적 풍토의 개방성을 느끼게 해준다.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정교하게 하수도처리가 된 성대로(聖大路, Sacred Way), 110m 평방의 아고라, 켈수스의 도서관, 김나지움, 스타디움, 초대교회유적, 번화가 쿠레테스로(Curetes Way), 고린도스타일의 하드리안 성전, 오데온 등으로 꽉차있는 이 도시는 꼭 한번 방문해볼 만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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