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Symposium
고대 그리스 사회가 학문과 예술, 민주주의의 요람이 된 데는 노예들이 생산력을 도맡아준 덕택이 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학문의 근본인 철학,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가 노예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랐다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노예제가 당연시되던 시대였으므로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만약 노예제가 아니었다면 그리스 문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리스 문화의 한 단면을 말해주는 개념이 심포지엄이다. 오늘날 심포지엄이라면 정해진 주제를 놓고 서로 견해나 분야가 다른 전문가들이 나와 전문적 지식과 연구 분석을 바탕으로 토론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개념은 원래 고대 그리스의 지식인들이 잔치를 즐기며 대화와 토론을 나눈 데서 생겨났다. 노예들이 음식과 서빙을 담당했을 테니 지금의 학술회의와는 사뭇 다른 흥청망청 분위기다.
심포지엄은 ‘sym(함께)’과 ‘posis(마신다)’의 합성어다. ‘함께 술을 마시며 벌이는 토론회’라는 뜻이다. 이 용어가 오늘날 학술회의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플라톤(Platon, BC 427~347)이 심포지엄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남겼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다른 저서들처럼 『심포지엄』도 대화체다. 현대의 심포지엄과 다른 점은 등장인물들이 함께 토론과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한 사람씩 차례로 나서서 연설을 하며 자기 견해를 밝힌다는 점이다.
기원전 5세기 초반 어느 날 저녁 아테네의 시인 아가톤의 집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열린 ‘심포지엄’에는 모두 여덟 명이 참가했다【물론 실제 심포지엄은 아니고 플라톤이 가상으로 꾸민 토론회였다】. 이 날의 주제는 사랑의 신 에로스였다. 참가자들 중에는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뒤섞여 있었으며, 핵심 인물은 모두의 선배이자 스승격인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였다. 인물들은 차례로 나서서 에로스 신과 사랑의 개념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오늘날의 사랑과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동성애였다.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였을 뿐 사랑의 목적이나 대상은 되지 못했다. 당시의 귀족과 지식인들에게는 미소년을 애인으로 거느리는 관습이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심포지엄에서 말하는 사랑도 역시 동성애였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사랑이었다. 지금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플라토닉 러브인 셈이다.
동성애와 플라토닉 러브, 이 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좋지 못한 사람이란 영혼보다도 오히려 육체를 사랑하는 저속한 사람을 말합니다. 게다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그 자신 또한 영원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심포지엄』”
등장인물의 한 사람인 파우사니아스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당시 그들이 중시했던 사랑은 동성애나 이성애가 아니라 영원한 것에 대한 추구였다.
이런 입장은 본론이자 결론의 역할을 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혜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따라서 에로스는 바로 지혜를 사랑하는 신입니다.”
그리스어로 ‘사랑한다’는 말은 philein이고, ‘지혜’는 sophia다. 이 말들이 합쳐져 지혜를 사랑하는 것, 즉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럼 철학의 고향은 심포지엄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사상 첫 심포지엄의 주제가 사랑이었다는 사실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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