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유대교로부터 이탈된 기독교: AD 10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한 30년 동안 기독교는 복음서와 함께 놀라운 교인들의 팽창을 기록했고 특히 동방세계에서는 확고한 교회조직을 형성했다. 요한복음서내에서는 유대인(the Jews)이 저주의 대상으로 기독교인과 확연히 구분되어 객화된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도다.’(요 1:11),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예수의 적대세력으로서 예수의 삶이나 그것을 읽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곧 기독교가 완전히 유대교로부터 이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서는 초대교회 내에 유대인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쓰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관복음서 내에서는 예수가 청중들의 일상생활적 삶의 가까운 역사적 지평 속에서 살아 꿈틀거린다. 우리와 같이 생활하고 호흡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속에서는 예수가 초역사적 지평 위에 있다. 너무도 멀리 있는 것이다. 이미 예수의 이야기는 기억되고 있는 역사 속의 담론이 아니라, 기억 속에는 담기 어려운 추상적 존재의 담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당대의 한 시점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당대의 사람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기억이 초월된 영원한 현재로서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속의 예수는 과거사 속의 한 인물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의 인물(the eternal Contemporary)인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서의 저술연대는 AD 100년 이전으로는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다.
전통적 교설에 따르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에베소에 살았던 어떤 지혜로운 노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전설처럼 그 노인이 곧바로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인, 벳새다 사람 세베대의 아들 요한(John the son of Zebedee, 마 4:21, 막 1:16, 눅 5:10, 요한의 형은 야고보)의 늙은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혹설에는 요한이 예수의 이종사촌이라고도 한다. 즉 세베대의 부인 살로메가 예수의 엄마 마리아의 여동생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러한 전설들로부터 우리가 요한복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의미있는 것으로 취할 수 있는 측면은, 달관한 사상가의 모습과 예수에 관한 아주 초기전승과 맥이 닿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 두 사실, 그러니까 달관한 사상가, 독자적으로 초기전승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는 두 사실은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데 지극히 중요하다.
요한복음은 에베소에서 쓰여졌을 수도 있고, 시리아에서, 혹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여졌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추정일 뿐 아무도 모른다. 단지 확실한 것은 기독교가 이미 완전히 낯선 땅으로 나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동방지중해연안의 대도시에는 거의 다 기독교교회가 성립했고 어떤 교회는 이미 반세기의 전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팔레스타인이라는 역사적 지평은 추상화되어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이방신도들에게는 그것은 무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자연히 기독교내로 모든 이방전통이 역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세는 헬레니즘의 언어와 빛깔과 내음새라는 필터를 통해 들어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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