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의 디테일
예를 들면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그 유명한 이적의 장면을 한번 보자! 그 기술방식이 너무도 사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예수께서는 본래 마르다와 그 여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고 계셨다.’(요 11:5). 이것은 평소부터 너무도 마르다, 마리아 두 자매와 그의 오빠 나사로를 잘 알고 있었고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애정의 표시이다.
그 두 자매가 애통해하고 있는 장면에까지 예수가 가는 과정도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있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는 마중을 나간다. 그동안 마리아는 집안에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께 이렇게 말한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
마르다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귓속말로 말한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달려간다. 마리아는 동네어귀에 서 계신 예수님께 달려간다. 그 앞에 엎드려 엉엉 통곡한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대인들까지도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말한다. “저것 좀 보시오. 나사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었다: “돌을 치워라.” 누이 마르다가 “주님, 그가 죽은 뒤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11:44)
이상은 내가 공동번역을 간추려 요한의 표현대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리얼하게 더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로고스로서의 가현체가 이적을 행하고 있는 장면이 아니다. 예수는 한 인간으로서 정말 슬픈 것이다. ‘비통한 마음이 북바쳐 오르며’ 애통해하는 자들과 더불어 ‘눈물을 죽죽 흘린다.’ 그리고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간다.’ 그리고 타 복음서 같으면 그냥 ‘일어나라’ ‘나오너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매우 리얼한 상황묘사가 있다. 돌무덤 속에 갇혀 있는 시체는 이미 나흘이나 되었다. 썩은 내음새가 펄펄 나는 것이다. 아니 정말 요한의 문장 그 자체로부터 썩은 내음새가 펄펄 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도 그 모습은 염을 해서 삼베와 수건으로 감겨있는 채로 걷고 있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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