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이 단절되는 절대적 타자
그런데 전통적으로 구약의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歷史) 속에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이다. 만약 하나님이 시공을 초월한 존재로서만 머문다면 그런 하나님이 과연 우리 삶에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아론의 지팡이를 보내어 애굽의 압박자들을 정죄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 항아리로써 먹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해주시고, 계명을 주시어 살게 해주시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적 지평 위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기 때문에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적 지평 위에서 역사하는 동시에, 역사ㆍ세계라는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라는데 그 아이러니칼한 성격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공이 단절되는 절대적 타자(the Absolute Other)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공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어떻게 드러내는가? ‘말씀’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도올 김용옥의 말씀을 듣듯이 이비에스(EBS), 케이비에스(KBS), 엠비씨(MBC) 방송국 녹화장에서처럼 들을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듣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임의적으로 듣고 싶다고 해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웨이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일방적인 말씀으로 나타난다. 이 나타남을 계시(Revelation)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계시는 아무에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권능을 지닌 선택된 자에게만 나타난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다윗에게, 사무엘에게,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사상은 애초로부터 계시의 사상에 의해 규정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곧 계시를 말하는 것이고, 계시를 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묘사하는 예수는 그러한 이전의 선지자나 예언자나 메시아적 왕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나타난 것이다. 지상의 인간 속에 한 빛줄기가 계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인간으로 육화(肉化)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그 자체의 화신(化身)일 수도 있다. 아니 그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일 수도 있다. 나의 말씀이 곧바로 나인 것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요한복음강해』 68).
존재론과 구속론의 갈등이 노출되고 있는 이러한 문장의 상세한 해설은 나의 책 『요한복음강해』 제1장 해설에서 다시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로고스 그리스도론의 위험성은 예수라는 존재가 시공 밖에 그 존재의 실재적(實在的)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지평 위에서 육화(肉化)된 예수 그리스도는 가현적(假顯的) 허상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러한 가현론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한다. 요한은 예수에게 완전한 인성(full humanity)과 완전한 신성(full divinity)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해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써 모든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나타난다. 그러나 인간의 편에 서있는 예수는 한없이 인간적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에 비해서 매우 신비적이고 추상적이고 영적일 것만 같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섬세함이 가장 극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 신성과 인성의 콘트라스트, 그 긴장감이 요한복음서를 듣거나 읽는 자에게 가없는 감동을 자아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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