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과 아우구스티누스
내가 제롬과 같은 사람들의 생애를 간략하나마 소개하는 뜻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성서의 모습이 거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그 황량했던 시절에 이미 팔레스타인 각지를 순례하면서 역사적 상황과 분위기를 익히고 히브리어와 희랍어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유려한 라틴어로 번역을 감행했던 사막의 수도승 제롬과 같은 이들의 피눈물 나는 삶의 헌신과 천로 역정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성서는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서를 성령의 계시라고만 주장하는 성령파들은 이러한 기나긴 인간의 노력, 성경으로 인도된 위대한 문명의 축적을 망각하고 성서에 대해 모독적 발언만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무지가 성서를 파괴하고, 성서를 마치 무당ㆍ점쟁이들의 예언서나 부적 수준으로 타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자그마치 2천년의 인간의 노력의 축적으로 인하여 그 모습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제롬은 베들레헴에서 시편을 제외한 구약성서 전체를 히브리텍스트를 비교해가면서 다시 번역했다(405년경 완성), 그는 셉츄아진트번역이 오역이 많고 표현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롬으로 인하여 신ㆍ구약성서의 라틴 벌게이트의 초기모습이 갖추어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롬ㆍ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와 동시대의 거대사상가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 키케로와 마니케이즘에 빠져있다가 네오플라토니즘과 해후하면서 그 틀 속에서 신의 존재성과 악의 기원에 관한 이원적 해석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열렬한 정통기독교신자로 개종하게 된 히포의 주교(bishop of Hippo), 아우구스티누스도 그의 유명한 『신국론(De Civitate Dei, the City of God)』이나 『참회록(Confessione, Confessions)』에서 제롬의 성경을 인용하지 않는다. 그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라틴역들이 더 친숙했고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타나시우스의 27서체제는 수용했다. 나는 고대 철학과 시절에 펭귄판 『신국론』을 읽으면서 거기에 인용되고 있는 성구가 때때로 내가 알고 있는 성구와 달라 곤혹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성서의 축자(逐字) 완벽주의는 나의 삶의 많은 계기를 통하여 이렇게 물음표를 던졌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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