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④강: 사람은 언제 생각을 하게 되나
흔히 사람을 ‘생각하는 동물’이라 정의하고, 뭇 동물들보다 ‘영장靈長’이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말한다. 즉 동물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며, 그 생각을 통해 자연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인위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모든 동물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식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인간은 참 대단한 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일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난 언제 생각이란 걸 해봤지?’라고 되물어보길 바란다. 그제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사람은 엄밀히 따지면 ‘생각하는 동물’이라기보다 ‘관성에 따라 살되, 어쩌다 한 번씩 생각하는 동물’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생각하는 동물’이란 정의는 전혀 나을 것 없는 인간을 한껏 띄우기 위한 부풀려진 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 생각하는 동물이라 정의했지만 실상 사람은 늘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동물’이란 오해
그렇다면 사람은 과연 언제 생각이란 걸 하게 되는 걸까?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생각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보통은 습관, 관성에 따라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자동화되어 있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평상시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해오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고, 생활을 해나갈 뿐이다. 그러니 골치 아플 필요도 없으며 그저 정해진 생활 패턴에 따라 맹목적으로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쯤 되면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냐? 정해진 방식대로만 살아가는 기계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영영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그것도 아니다. 간혹 생각을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다시피 ‘간혹’ 그렇다. 이에 대해 일상적인 예를 들어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 일상을 살 때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당연함에 빠져들고, 익숙함에 젖어든다.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늘 생각하는 건 아니다
잠을 자던 사람이 아침에 눈을 뜬다. 당연히 시계를 확인하고 일어나야할 시간인지, 더 자도 될 시간인지 확인한다. 이 순간엔 정해진 패턴에 따라 흘러갈 뿐이지 생각을 하진 않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되었기에, 일어나 방에 불을 켠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의 물을 틀고 몸을 씻기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 어디에도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그저 해오던 방식대로 몸이 자동적으로 해나가니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일상이 무너지고 당연함이 사라진 환경에 처할 때에야 비로소 하게 된다. 일어나자마자 방에 불을 켰는데 불이 켜지지 않을 때, 수도꼭지를 틀었음에도 물이 나오지 않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세면도구가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무언가 변화가 있을 때 사람은 그 순간 멍해지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라고 물음을 던지며 상황을 정리하려 한다. 사람에게 생각이란 미지의 혼란스러움을 지의 익숙함으로 바꿔, 예측 가능한 상황으로 만들려는 발버둥이라 할 수 있다.
▲ 전주 풍남문 세월호 광장. 일상이 깨질 때, 익숙함이 무너질 때야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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