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④강: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란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웬만하면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다.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순응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당연함과 익숙함에 물들고 말았다.
▲ 생각하지 않는 동물에게 붙인 생각하는 동물이란 수식어의 아이러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머니의 된장국’만은 아니고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을 하려 애쓰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전사 같은 비장함이 감돌지만, 사실 이 말은 김승희 시인이 쓴 시에서 따온 것이다.
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다,
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
(중략)
그러므로, 당연의 세계는 물론 옳다,
당연은 언제나 물론 옳기 때문에
당연의 세계의 껍질을 벗기려다가는
물론의 손에 맞고 쫓겨난다,
당연한 손은 보이지 않는 손이면서
왜 그렇게 당연한 물론의 손일까,
당연한 세계에서 나만 당연하지 못하여
당연의 세계가 항상 낯선 나는
물론의 세계의 말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
물론의 세계 또한
정녕 나를 좋아하진 않겠지
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
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
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물론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하략)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 김승희
동섭쌤 강의를 듣는 도중에 김승희 시인에 대해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 알지 못했지만 두 편의 시를 소개받고 읽어본 것만으로도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 「<일상>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면」이라는 시나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라는 시는 생각하게 되면 일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시적인 언어로 담담하면서도 발랄하게 풀어냈다. ‘일상’에서 ‘ㄹ’을 빼면 이상하게 보이고, ‘당연’과 ‘물론’과의 싸움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이며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이지만, 그럼에도 ‘당연과 물론을 양손에 들고 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먹었어’야만 한다.
▲ 너무 당연하기에, 더 이상 물을 수 없는 물론이기에 어려운 싸움이다.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
뜯어먹는다고 ‘일상’이 붕괴되거나 ‘당연’이 깨지거나 ‘물론’이 박살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일상에서 ‘ㄹ’을 빼야 하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을 계속 해야만 한다. ‘작은 차이가 크나큰 어긋남을 빚어낸다毫釐之差 千里之繆’는 말처럼, 일상을 낯설게 보고 의문시하며 생각을 해보는 작은 행동 하나가 나의 삶을 바꿀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식으로 디자인되어 있는지, 그런 디자인이 우릴 어떻게 억누르고 한계 짓는지, 그 디자인을 살짝 바꾸는 행위를 통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아봐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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