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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 교육학 - 37. ④강: 농구의 24초 룰과 능력주의 본문

연재/배움과 삶

트위스트 교육학 - 37. ④강: 농구의 24초 룰과 능력주의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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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농구의 24초 룰과 능력주의

 

 

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고, 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는 시구처럼, 우린 당연의 세계에서 태어난다. 이 말을 동섭쌤의 표현으로 바꾸면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디자인된 세계에 살게 된다는 말이다.

 

 

생각하지 않는 동물에게 붙인 생각하는 동물이란 수식어의 아이러니.

 

 

 

당연의 세계에 소송 걸 수 있는 힘, 24초 룰

 

처음 디자인될 당시엔 그게 수많은 사회 중 하나의 사회 모습에 불과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느 순간엔 유일한 사회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여러 사회의 모습을 억압하고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유일한 사회도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테지만, 권좌에 오른 이 순간만큼은 절대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만 보인다. 이런 상황이니 부조리하게 느껴지고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거기에 대해 불만조차 제기할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일상을 이상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을 부적응자나 불만세력으로 폄하하며 옥죄려 하니 말이다. 그건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당연의 사회를 유지하려는 발버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의 저자인 오자와 마키코小沢牧子의 아들이자 싱어송라이터, 오자와 겐지小沢健二(1962~)가 쓴 <24초 룰>이라는 환상 혹은 환세계幻世界라는 글은 당연의 사회에 소송을 걸수 있도록 힘을 준다.

 

 

위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계간지의 사진을 보여주는 동섭쌤.

 

 

 

득점이 많고 적음은 단순히 실력의 탓일까?

 

우린 너무도 당연히 스포츠를 볼 때 득점을 많이 하면 실력이 우수한 선수로, 득점이 적거나 없으면 실력이 형편없는 선수로 생각한다. ‘득점=실력이라 보는 관점은 성적=능력이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학교에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능력이 출중하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많은 혜택(우등반, 여러 경시대회에 지원할 기회 등)을 주더라도 찍소리도 내지 않는다. , 개체 내부에 실력의 높고 낮음이 이미 형성되어 있어서, 성적이 높으면 실력이 좋은 사람으로, 그렇지 않으면 실력이 낮은 사람으로 보는 것을 당연시한 것이다. 이걸 바로 개체의 내부에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문제제기를 할 수는 없다. 아니, 문제를 제기해봐야 그게 부당하면 너도 성공해라는 조롱을 받거나, ‘역시 능력도 없는 것들이 불만만 많아라며 비꼬임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동섭쌤이 말해준 ‘24초 룰이란 건 능력주의 사회가 허구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농구는 1891년에 처음 발명되었고, 1898년에 프로농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프로농구가 생겨 시간이 흐르며 더블 드리블 금지와 같이 룰이 다듬어져 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당시 프로농구의 점수는 겨우 ‘18:19’하는 식으로 낮았다고 한다. 지금은 점수가 100점이 넘어가기도 하니, 능력주의적인 시각으로 보면 초창기 때 선수들은 실력도 좋지 않고 체력도 좋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럴까?

 

 

지금 농구경기에선 선수들이 활발하게 경기를 진행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인 속에 산다, 그러니 재디자인을 하면……

 

프로농구가 1898년에 시작된 이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20점대의 스코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큰 변화가 없던 스코어는 1953-54시즌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몇 십년간 높아지지 않던 점수가 갑자기 높아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전까지의 경기에는 공을 가진 팀에게 공격 제한시간 같은 게 없었다고 한다. 지금의 축구처럼 공격 제한시간이 없다보니, 공을 마구 패스하며 시간을 때우면 됐다. 그러니 그 당시의 전술이란 일점이라도 이기고 있으면 상대편이 공을 채가지 못하도록 자기들끼리 패스를 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러니 게임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게임의 진행속도는 현저히 느려지고, 박진감은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어, 점차 관객들은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너들은 ..뭔가 큰 소리로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재미없는 스포츠다라는 생각이 짙어졌고 관객들은 정말 재미없다. 드리블로 도망가기만 하고.”라며 야유를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조차도 선수든, 감독이든, 관객이든 누구 하나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위 사진에 지워진 하나의 룰이 농구의 양상을 바꾼다.

 

 

그러던 1954년에 프로 팀 오너 중 한 사람이 공격팀 제한 시간을 생각하게 되었고, 제한시간은 24초로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하게 되었단다. 단순히 하나의 룰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로인해 전략이 완전히 바뀌었으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뺨칠 정도로 선수들의 기량 또한 눈에 띄게 향상됐다. 더 이상 무한정 시간을 끌며 공을 돌릴 수 없기에 어떻게 최대한 빨리 빈틈을 찾아 공을 넣을 것인가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

우린 디자인된 세상에 던져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디자인은 나의 몸에도 맘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 디자인된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프로농구가 처음 시작됐을 때의 선수들도 자신이 어떤 룰에 영향을 받으며 경기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스코어가 낮을 때마다 나는 왜 이리 실력이 없지?’라며 자신을 탓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인된 세상에 던져졌음에도 그 디자인을 알게 된 사람에겐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특권이 주워진다. 그래서 룰을 바꿀 수 있었고, 바뀐 룰로 인해 농구의 경기 양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있기까지 6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안 비밀이다.

 

 

이와 같은 점수가 나올 수 있었던데엔 'shot clock'의 개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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