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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계와 정과 삼매에 대해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계와 정과 삼매에 대해

건방진방랑자 2022. 3. 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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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와 정과 삼매에 대해

 

 

(, sīla)란 무엇인가? 계는 계율을 말하는 것이다. 계율이란 무엇인가? 계율이란 번쇄한 타부가 아니요, 우리 몸의 디시플린(discipline)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계가 없이는 건강할 수가 없다. 부처님처럼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불건강과 타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 samādhi)이라 하면 우리는 선정(禪定)이나, 좌선, 혹은 요가수행이나, 갖가지 명상법 등을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러한 말들이 정과 결코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은 정의 방편이지 정 그 자체가 아니다. ()이란 본시 다나(dhyāna, 禪那)의 음사로 생겨난 말인데, 그것은 정려(靜慮)라고 의역되는 것이다. 즉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이란 앉아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坐禪], 누워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臥禪], 걸어가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行禪], 생활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處處禪].

 

그렇다면 정()이란 무엇인가? 그 말의 음사가 삼매(三昧, samādhi, 三摩地)인데, ‘독서삼매하는 우리말의 뜻이 전하여 주듯이 그것은 어텐션’(attention)이라 번역하는 것이 제일 타당하다. 그것은 주목이요 집중이요 통일이다. 그것은 단지 육체와 분리된 정신의 통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온몸으로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수행자들이 정을 육체와 분리된 정신의 통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이해방식이다. ‘독서삼매란 독서하는 그 행위에 열중하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능력이다. 집중능력이 없으면 모든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매사에 철저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는 실제로 좌선을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선정이란 곧 생활 속의 집중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신유학에서 경()이라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 주일무적(主一無適: 하나에 집중하여 산란함이 없다)하여 매사에 진지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을 우리가 경()이라 부르는 것이다. 헛되이 겸손한 체하고 공손한 체 하는 것을 경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생활에서 이 경이나 정이 없으면 그 인간은 저질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은 너무도 뻔하다.

 

수능시험장에 가는 한 천재소년의 이야기를 실례로 들어보자!

 

그는 학급에서도 줄곧 일등만 해왔고, 모의고사 성적도 전국 일위는 항상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는 막강한 영수실력의 소유자이며, 누구든지 그는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그는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태연할 수가 없었고 줄곧 긴장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뿌옇게 느껴졌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당황해서 아무 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그가 평소 아무리 대단한 지식의 소유자이며 지혜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필요한 당장에서 냉정하게 집중할 능력이 없다면 그 지혜와 지식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모의고사 전국1등자라 할지라도, 막상 수능시험장에서 답안지에 번호 매기는 것을 한 칸씩 내려 칠하는 실수를 범해도 12형설지공(螢雪之功)이 하루 아침에 나무아미 도로타불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선정(禪定), 즉 삼매란 이러한 인간의 냉철한 정신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집중력이 뛰어나도, 지혜가 없고 지식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삼학(三學)의 최후 항목이 바로 혜()라는 것이다.

 

 

 뚜글라크왕조의 이 폐성을 보통 뚜글라카바드(Tughlaqabad)라고 부른다. 기야스웃딘의 아들 무하마드 뚜글라크는 이 성이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데칸의 다울라타바드(Daulatabad)로 수도를 옮겼다. 이때 그는 델리의 모든 신민을 데리고 1,100km의 행군을 강행했다. 신민들은 파리떼처럼 죽어갔다.

당대의 현장기록을 남긴, 이슬람 문명권의 마르코 폴로라 할 수 있는 이븐 바투타(Ibn Baṭṭūṭah)는 말한다: “델리에는 개나 고양 이 한마리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인민의 아우성조차 스러진 폐허는 아름답다. () 또한 실상(實相)이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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